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 방문 첫날인 20일 첫 행보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삼성전자의 경기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다. 양국 경제안보 동맹의 핵심인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의 협력 의지를 세계에 과시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함께 연설하고 직원들과 대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함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기로 잠정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방한 첫날인 20일 오후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차장은 “윤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가서 연설하고 근로자들과 환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문 일정에는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마크 리퍼트 삼성전자 북미법인 부사장도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반도체 생산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 평택캠퍼스는 삼성전자의 차세대 반도체 생산기지로 차세대 메모리(D램·낸드)뿐 아니라 초미세 공정의 파운드리 제품을 생산한다. 부지 면적만 국제규격 축구장 400개를 합친 289만㎡(약 87만 평)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다.
삼성 평택공장 찾는 尹-바이든…韓·美 '반도체 동맹' 속도 낸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은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양국 기업들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엔 인텔, 퀄컴 등 세계 최고의 반도체 설계업체가 즐비하다. 칩을 생산하려면 삼성전자나 TSMC 같은 파운드리업체가 필요하다. 구글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엔 서버 확충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선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김 차장은 “그간 이어진 군사동맹,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경제동맹에 이어 기술동맹이 추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양국 정상의 방문을 앞둔 삼성전자는 ‘비상’이 걸렸다. 이재용 부회장 등 경영진은 이날 평택 공장을 찾아 준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양국 대통령에게 직접 생산시설을 소개할 예정이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세계 1위 시스템 반도체 국가와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국가의 정상이 한국의 반도체 공장에서 손을 맞잡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될 것”이라며 “지난해 미국에서 웨이퍼를 한 손에 들고 자국 중심의 반도체 동맹을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과 함께 역사적 장면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IPEF 가입, 中 배척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미국, 한국, 일본, 대만 간 ‘반도체(Chip) 4국 동맹’ 구축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한국, 일본, 대만 정부에 자국의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한 동맹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미국 반도체 공장이 완공돼 본격 가동되는 2025년까지 미국의 동맹국들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새로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초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민간 전문가들과 관련 내용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가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기로 전격 결정하면서 ‘칩4 동맹’에 가입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IPEF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다자 경제 협의체다. 핵심 소재 및 산업의 안정적 공급망 구축과 디지털 경제 등 신(新)통상 의제를 다루는 협의체다. 중국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IPEF 출범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함께 참여를 공식화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오는 24일 일본에서 열리는 IPEF 출범 선언 정상회의에도 화상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방한 후 곧바로 일본을 방문하는 바이든 대통령 주도로 IPEF 출범을 공식 선언하는 회의다. 김 차장은 “한국이 주도적으로 스탠더드(기준)를 제시하고 다른 나라를 초대하며 IPEF에서 국익을 도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국이 미국 주도의 반중 협의체에 가담할 경우 중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 차장은 “IPEF 가입이 중국을 배척하는 게 아니다”며 “IPEF를 단순히 강대국끼리의 디커플링(탈동조화), 적대적 디커플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좌동욱/박신영/김동현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