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후 엿새 만의 국회 시정연설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빠르다.  김병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후 엿새 만의 국회 시정연설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빠르다. 김병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 과제를 화두로 꺼냈다. 한국의 성장과 도약을 위해서는 이들 분야의 개혁이 시급하다는 의견은 그동안 끊임없이 나왔다.

3대 분야 개혁은 입법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는 게 공통점이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정치권은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회피하곤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들 분야 개혁은 지지부진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초당적 협력을 수차례 강조하며 3대 개혁 추진을 제안한 것 자체가 여당은 물론 야당에 압박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입법 성과가 미진할 경우에 대비한 명분 쌓기라는 관측도 있다.

“영국 전시내각처럼 협치해야”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취임 엿새 만에 이뤄졌다. 역대 정부 중 가장 빠르다. 연설문에는 ‘초당적 협력’이란 문구가 세 번, ‘의회주의’는 네 번 나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보수당 출신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과 노동당 출신 부총리 클레멘트 애틀리 간의 협력도 거론했다. 윤 대통령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은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해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나라를 구했다”고 강조했다. 현 상황을 전시와 같은 위기 상황에 비유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사회와 제도 개혁을 위해서 야당의 협조를 꼭 구해야 하는 ‘여소야대’ 정치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윤 대통령이 여야 협치를 강조하는 데 연설의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배경이다. 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으로 ‘강 대 강’ 국면으로 대치했던 새 정부 출범 직후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윤 대통령이 이날 제시한 ‘3대 개혁 과제’는 거대 야당과 국정 현안을 논의하면서도 “마냥 수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겼다. 연금·노동·교육 등 3대 분야 개혁과 관련해선 윤 대통령도 선거 당시 과감한 개혁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새 정부 출범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공적연금 개혁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한 게 전부다. 인수위는 국민연금 보험료와 수급액을 다시 조정하는 민감한 사안은 여야 정치권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기구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국회에 공을 넘긴 것” 분석도

윤 대통령의 이날 연설을 고려하면 노동과 교육 개혁도 연금 개혁과 비슷한 방향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이 발표한 110개 국정과제 중 노동 과제인 △중대재해법 등 산업안전보건 관계법령 정비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고용보험기금 재정건전성 확보 등은 연금 개혁처럼 사회적 합의가 어렵고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대입제도 개편, 대학 규제 개혁, 유치원과 보육원 통합 등 교육 공약도 이해 관계에 따라 입장차가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민감한 사안들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3대 개혁 추진을 제안하면서 “정부와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공을 국회로 넘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하면서도 개혁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입법권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하려 한 것”이라며 “몸은 낮추면서 국회에 협치를 요청하는 게 오히려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노력에도 실타래처럼 얽힌 여야 대치 정국이 풀릴지는 불확실하다는 평가다. 우선적으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문제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을 두고도 여야가 팽팽히 대치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6·1 지방선거 전까지 대치 정국이 풀리기 어려운 만큼 돌파구는 선거 이후에 마련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