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온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수완박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가결 시키고 있다. 뉴스1
박광온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수완박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가결 시키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8일 "범인보다 경찰에 더 분노한다"는 제목의 [여기는 논설실]칼럼을 쓴 후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11월15일 발생한 인천 층간소음 칼부림 사건에 관해 더 말할 게 있다는 겁니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204081974i
"범인보다 경찰에 더 분노한다" [여기는 논설실]

피해자 남편 유 모씨는 크게 세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우선 사건 당일 1차 신고때 출동했던 경찰관 2명을 직무유기로 추가 고소할 예정이라는 겁니다. 지금은 2차 신고때 출동했다가 칼부림 현장에서 도주한 두 명의 경찰만 직무유기로 해고된 상태입니다. 피해자 가족이 1차 신고때 출동한 경찰들까지 고소하려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건 당일 4층 가해자는 아침부터 3층으로 내려가 욕설을 퍼부으며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문을 따고 들어가려 시도했습니다. 겁이 질린 3층 주민이 신고를 했고, 남성 경찰 두 명이 출동합니다. 이들은 3층 주민과 함께 4층으로 올라가 가해자를 만났습니다. 이때 가해자 손에 붕대가 묶여 있고, 피가 흥건했다고 합니다. 피해자 가족이 깜짝 놀라 경찰에게 왜 피를 흘리는지 확인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경찰관들은 "오리발을 내밀고 있지 않냐" "칼로 찌를 일은 없길 바래야죠"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가해자는 칼 같은 날카로운 도구로 3층 주민의 집 자동문을 따고 들어오려 했다는 겁니다. 그때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유 모씨는 1차 신고때 경찰이 성의있게 사태를 파악했더라면 3시간 반후 가해자가 피해자 가족을 칼로 난도질하는 비극은 예방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두번째는 이번 사건의 성격에 관한 겁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번 사건이 층간소음 분쟁으로 인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1차 신고때 출동했던 경찰들이 돌아간 후 3층 부부는 4층 가해자가 칼로 추정되는 물건을 가게에서 사들고 오는 것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오전에 3층집에 침입하기 위해 칼같은 날카로운 도구로 문을 긁다가 망가지자, 새 칼을 사가져 온 것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가해자는 그날 오전부터 계속 피해자 가족을 위해할 계획을 세웠다는 주장입니다. 계획된 살인미수 사건이라는 게 주장의 핵심입니다.

세 번째는 생활고에 대한 호소입니다. 피해자 가족은 사고후 생계가 끊겨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부부가 택배일로 생계를 꾸렸는데 아내는 칼에 찔려 사실상 뇌사상태이고, 남편도 칼에 여기저기 찔리고 소송 문제까지 겹쳐 일을 못하고 있습니다. 얼굴과 손 등에 상처를 입은 딸은 트라우마로 취업을 포기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피해자 남편은 생활비를 대기 위해 친척과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합니다. 유모씨는 "경찰의 명백한 잘못으로 이런 끔찍한 사고가 났는데 치료비와 생활비 일부만 주고 나몰라라하는 것을 보면 정말 국민을 위한 경찰이 맞나하는 의문이 든다"고 했습니다.현재 피해자 가족들은 경찰과 정부를 상대로 18억원 상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천 칼부림 사건의 진행과정은 한국 경찰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경찰은 가해자가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도, 피해자 가족이 조사해 달라고 호소하는데도 단순 층간소음으로 간주해 아무런 조치없이 그대로 돌아가 사고를 사전예방할 기회를 놓쳤고, 사고 현장에서는 피해자 가족을 놔둔채 도망해 피해를 키웠습니다. 경찰들은 피해자 가족들이 범인을 제압한 후에야 현장으로 돌아와 범인만 데리고 나갔고, 그 바람에 칼에 찔린 피해자는 골든 타임을 놓치고 뇌사상태로 빠졌습니다. 경찰은 사고 수습과정에서도 부실 대응을 숨기기 위해 피해자 가족을 협박, 공갈한 것이 녹취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피해자 남편 유모씨는 "이렇게 해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다"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인천 칼부림 사건을 보면 현재 진행중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관련법 처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 정부는 집권 이후 줄기차게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통해 검찰의 힘을 빼고 경찰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부정부패와 선거 등 6대 중대 범죄를 빼고 모두 수사권을 경찰로 넘겼고, 인력도 2만명이나 증원시켰습니다. 국가수사본부도 신설됐습니다. 검수완박을 통해 경찰에 더 많은 권한을 보탤 예정입니다. 그런 법안을 어제 법사위에서 단독 처리했고, 오늘 본회의에도 올린다고 합니다.

경찰은 현 정부들어 더 비대해지고,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됐지만 그 행태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인천 칼부림 사건과 스토킹 피살 사건 등에서 보듯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본연의 임무에서는 낙제점에 가깝고,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폭행 사건과 대장동 의혹 사건 등 권력형 사건에서는 스스로 덮거나 뭉개는 비굴함을 보였습니다. 경찰내 성폭력 사건과 비위 사건도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말대로 검수완박이 국민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충분한 보완책을 마련하면서 순리대로 풀어가는게 맞습니다. 검찰도 경찰도 다 아직 준비가 안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집권 여당은 5월초 처리하겠다고 밀어부치니 오해를 받는 게 당연합니다. 그것도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당사자들이 말입니다. 정치는 명분입니다. 명분보다 사심이 강한 정치는 반드시 뒤탈로 고생하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