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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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2030 세대를 개딸·양아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한국 정치인 중 ’팬덤 정치‘에 가장 능한 이재명 전 경기도 지사의 팬클럽 회원이자 ’이재명 지킴이‘를 자처한다. 대선 유세에서도 자극적이고 전투적인 레토릭에 능숙했던 이 전 지사의 지지자들답게 이들을 부르는 호칭도 ’관종적‘이다. 개딸은 ’개혁의 딸들‘, 양아들은 ’양심의 아들‘의 줄임말이라고는 하지만, 듣는 이에겐 호전적인 어감만 남을 뿐이다. 하이데거나 비트겐슈타인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어와 의식 간의 관계는 너무나 밀접하다. 침대에서 굴러떨어질 정도로 SNS에 몰두한다는 이 전 지사의 언어 세계를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1)안면몰수 화법

그의 화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안면몰수 화법이다. 그가 불리할 때 쓰는 화법 중 하나로,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신간 <정치전쟁>에서 쓴 표현이다. 강 교수는 ’안면몰수 화법‘은 거짓말을 초연하게 잘한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이 전 지사에게선 상대방의 ’합리적 의심‘에 대해 그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대신 냉정하고 단호한 태도로 짧게 부인하는데 능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현상은 그가 가장 불리하게 느끼고 있는 대장동 관련 화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성남시장 시절 11일간의 호주·뉴질랜드 출장까지 같이 다녀온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그는 ”(김문기와 출장 간 사실이)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버텼다. 오죽했으면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밥을 먹어도 30끼를 같이 먹은 사이인데 모르는 사람이라고 발뺌한다“며 ”이재명 후보는 여차하면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도 모르는 놈이라고 우길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을 놓고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과 질의응답 때의 모습은 더 가관이다. 이 전 지사가 ”(유동규)는 압수수색 당시에 극단적 선택을 한다고 약을 먹었다고 해요. 그래서 뭐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고 하자, 김 의원이 ”본인밖에 알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누가 그렇게 보고를 해주셨어요?”라고 되묻는다. 이때 이 전 지사의 답은 역시 “잘 기억이 안 납니다”였다. 영상으로 이를 본 사람들은 그의 표정과 어투에서 뱀처럼 냉정하고, 얄미울 정도로 담담함을 느낀다.

(2) 비현실적 비유로 미화하기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미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현실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왜곡해 비유를 드는 경향이 있다. 2020년 3월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경기도민들에게 드리는 글을 보면 “곳곳에서 병으로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는 신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했다. 2020년 4월 경기도가 2020년 4월 배달의민족 수수료가 과다하다며 ‘배달특급’이라는 공공앱을 만들려고 할 때,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가 공공앱이 시장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자 이렇게 반응한다. “참으로 한가한 말씀이다. 홍수로 마을이 떠내려가는데, 돕지는 못할망정 둑 쌓는 사람에게 ‘댐 설계 같이 하자”는 국민의당이나 “방재는 정부에 맡겨라”는 안철수 대표님의 ’비난‘을 이해하기 어렵다.“

코로나로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해도 과거 6·25전쟁 때나 보릿고개 때처럼 ’굶어 죽을‘ 정도인가. 배달의민족 수수료 문제가 ’홍수로 마을이 떠내려갈‘ 정도로 시급하고 위중한 일인가. 현실을 실제 이상으로 열악하게 묘사해야 수호천사로서 본인의 이미지가 더 부각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3) 자기에게 반대하면 악마

그는 자신에게 태클을 걸거나 비판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2020년 9월 코로나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정부가 본인이 주장하는 전 국민 지급이 아니라 88% 선별지급으로 방향을 잡았을 때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원망이 불길처럼 퍼지고 있다. “당시 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을 뿐, 전 국민 대상으로 지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요원의 불길처럼 원망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성남시장 시절에는 중·고교 신입생들에게 무상 교복 지원안이 시의원들에 의해 제동이 걸리자 ”항일 독립운동하는 심정“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친일·반일의 황당한 대립 구도로 몰아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안에 반대한 성남시의회 의원들 명단을 SNS에 공개하는 인민재판식 마녀사냥 전술도 활용했다.

(4)불리하면 피해자 코스프레

그는 또 자신이 비판받거나 불리한 상황에 놓이면 모욕받는다는 피해의식도 보이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경기도 지역화폐에 대해 ”소비 진작 효과가 상쇄돼 가는 추세“라며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을 때의 반응이다. ”정부가 채택해 추진 중인 중요 정책에 대해 이재명의 정책이라는 이유로 근거 없이 비방하는 것이 과연 국책 연구기관으로서 온당한 태도인지 묻는다“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이 ’이재명 정책‘이라고 비판했을 리가 만무한데. 그는 이런 납득할 수 없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책연구원을 ”얼빠진 기관“으로 모욕하는 것으로, 분풀이와 복수를 하고 있는 듯하다.

(5)무개념의 언어파괴

그의 화법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정책에 과도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용어를 자의적으로 재창작한다는 것이다. 이 전 지사가 업적으로 내세운 과거 정책들을 조목조목 비판한 <이재명, 허구의 신화>에서는 이를 개념 파괴, 언어 파괴로 부르고 있다. 그는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있는 ’기본소득‘을 강조하기 위해 어처구니없게도 모든 지원금에 기본소득 이름을 붙이고 있다. 청년 배당도 청년 기본소득, 아동수당도 아동 기본소득으로 지칭하는 것은 물론 코로나 재난지원금조차 재난기본소득으로 부른다. 재난기본소득이란 표현은 문재인 대통령이 금지한 사항이기도 하다. 그가 지역화폐라고 부르는 것은 지역 상품권에 다름 아니다. 그의 표현대로 라면 백화점상품권은 백화점 화폐로, 도서상품권은 도서화폐로 불러도 된다.

그는 기본소득에 대한 작명은 물론 이를 홍보하기 위해 엄청난 홍보비도 쏟아 부었다. 기본소득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미국 <타임>지에 1억원짜리 광고를 게재하고, <포브스> <유로뉴스> 등 해외 매체에 수억 원을 쓴 것을 포함해 기본소득 광고에만 34억원이나 되는 ’혈세(血稅)‘를 지출했다. 국정감사에서 이 부분이 문제가 됐을 때 그의 답변 또한 기가 막힌다. ”기본소득은 대한민국의 주요 정책이고,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박람회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전 세계를 상대로 일부 홍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대한민국의 주요 정책“이라니 본인이 추진하면 무조건 대한민국이 추진하는 것인가.

그뿐만 아니다. 초등학생들에게 기본소득을 홍보하기 위해 경기도에서 발간하는 어린이신문에 기본소득 퀴즈 시리즈를 연재하고, 중·고교생들을 상대로 상금을 걸고 ’기본소득 아이디어 공모전‘도 진행했다. 현재 실행 중인 정책이라도 비판의 여지가 있는데, 실행하지 않는 정책에 대해 외국 언론에 까지 광고를 하고, 학생들을 상대로 세뇌성 홍보하는데 대해 유신시대 이상의 공포가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다. <이재명, 허구의 신화>의 저자는 ”시행하지도 않는 정책에 광고비와 홍보를 쓰는 건 사실상 사전선거운동이고 현대판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라며 ”공직선거법에 관련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지사는 현재 한국 사회의 최대 이슈인 ’검수완박‘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여당이 검수완박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는 그와 문재인 대통령을 검찰 수사로부터 지기키 위한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전 지사의 경우 검수완박과 함께 송영길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 시 공석이 되는 인천 계양을에 출마해 국회의원 신분을 얻고, 8월 더불어민주당 당권 장악으로 ’3중 방탄조끼‘를 입을 것이란 얘기도 파다하다. 그 진위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이 전 지사의 정계 복귀는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 곧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강준만 교수는 ”민생 법안은 과감하게 날치기해줘야 한다“, ”권력은 잔인하게 써야 한다“는 그의 말투들을 ’싸가지‘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그가 어떤 정치 언어로 다시 복귀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