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간사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두 번째)과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간사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두 번째)과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상장 벤처기업의 복수(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국회에 협조를 구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K+벤처’ 행사에서 “벤처기업의 창업부터 성장, 회수와 재도전까지 촘촘히 지원해 세계 4대 벤처 강국으로 확실하게 도약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정부가 제출한 복수의결권 도입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반년이 넘도록 묶이자 문 대통령이 직접 조속한 통과를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그로부터 약 4개월 만에 어렵사리 상임위를 통과한 복수의결권 법안은 이번엔 여당 내 강경파의 반대라는 암초를 만났다. 이들은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하고 재벌 세습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벤처업계에서는 “이미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대안을 마련했음에도 계속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반발했다.

글로벌 주요국은 이미 시행 중

'차등의결권=재벌 민원'이라며…'벤처 숙원' 걷어찬 박주민·박용진
10일 국회에 따르면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 논의 안건에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 개정안을 제외했다.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복수의결권 주식 도입을 핵심으로 한다. 현행 상법은 주당 하나의 의결권만 부여하는 ‘주주평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주당 복수의 의결권을 부여한 주식 발행은 허용되지 않는다.

벤처업계에서는 “벤처기업의 안정적 성장 및 창업 활성화를 위해선 복수의결권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1주 1의결권’ 원칙하에서 벤처기업이 외부로부터 자본 유치를 위해 주식을 새로 발행할 경우 창업주의 지분율은 낮아진다. 창업주 지분율이 낮아지면 안정적인 경영권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주요 선진국은 이미 복수의결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미국·영국·프랑스 등 17개국이 복수의결권을 시행 중이다. 중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도 2018~2019년 복수의결권을 도입했다.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글로벌 혁신기업들은 복수의결권을 활용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적극적인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혁신성장’ 기조를 내걸면서 복수의결권 도입을 추진했다. 정부는 2019년 3월 ‘제2벤처 붐 확산전략 보고회’에서 복수의결권 발행 허용 방안을 발표했다. 2020년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과 정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도 복수의결권 도입이 들어갔다.

정부가 그해 12월 발의한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가 자금 조달로 지분이 30% 이하로 낮아진 경우 주당 최대 10개의 복수의결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존속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하고 상장 후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보통주로 전환하게 했다.

여당 내 반대파가 제동

복수의결권 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 논의에서부터 난항을 겪었다. 정부는 물론 여야가 유사 법안을 발의하면서 모처럼 뜻을 모았지만 일부 소수 야당 의원이 ‘입법 독주’를 주장하며 제동을 건 것이다.

지난해 12월 2일 산자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 거의 1년 만에 상임위 문턱을 넘자 이번엔 법사위에서 다시 반대 의견이 나왔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같은 달 8일 “상법상 주주평등 원칙에 위배되고 대주주 지배력 집중 등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미 상법에는 의결권 없는 종류 주식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이런 제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여당 내 이견이 표출되면서 복수의결권의 12월 임시국회 통과는 무산됐다. 1월 임시국회에서는 법사위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9일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오기형·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에 적극 반대한다”며 “굳이 왜 우리 정부에서 재벌들의 민원 요청 사항인 인터넷은행특례법 등에 이어 이 법을 처리하려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오형주/김동현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