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 이전 이주 혹은 출생' 동포 기준, 반발 불러
"편의적인 기준 때문에 영주귀국 대상 차별받고, 이산가족까지 양산"
사할린 동포들 대통령에 청원·시민단체는 개정 촉구 성명
시행 1년만에 '사할린동포법' 개정 요구 목소리 높은 이유는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사할린동포법)을 개정해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시행 1년도 안 돼 높아지고 있다.

국내 시민단체들은 14일 "이산가족을 만드는 법"이라며 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고, 사할린 동포들은 앞서 한인협회 명의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제출했다.

지구촌동포연대(KIN)를 비롯해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평화디딤돌, 겨레하나 등은 '사할린 동포를 갈라놓는 사할린동포법 개정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에서 "사할린 동포를 지원한다는 법이 오히려 동포들에게 마음의 응어리를 지게 만든다"며 "하루속히 법 개정을 추진해 동포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박순옥 사할린한인협회장은 "'사할린 동포는 1945년 8월 15일까지 사할린에서 출생했거나 사할린으로 이주한 한인'으로 규정한다는 어떠한 역사적 근거도 없이 편의상 날짜로 정해놓은 것 때문에 영주귀국 대상도 불평등해졌다"며 "이산가족을 만드는 사할린동포법을 고쳐 끝없는 이산가족의 역사를 끝내달라"고 문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지원 '사할린동포법' 탄생
1938년부터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간 동포들은 고국 귀향길이 고단하기만 했다.

현재 사할린은 러시아 땅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제가 점령해 많은 한국인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디.
전문가들은 사할린 강제징용 동포 수를 5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사할린 동포 단체들은 사망했거나 일본 본토로 이중징용된 경우를 제외한 동포 1세와 2세가 4만3천여 명이라는 통계를 내놨다.

초기 이들의 영주귀국은 '한국에서 신원보증을 하는 친척이 있는 고령의 독신자'들에게만 허용됐다.

그러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합의에 따라 양국 적십자사는 1989년 7월 14일 협정을 맺고 이들의 모국 영주귀국을 추진했다.

당시 정부는 영주귀국 대상을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 거주 및 태생'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사할린동포법에서 '동포'의 기준으로 적용됐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지침은 애초부터 사할린 동포들의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1994년 사할린한인협회와 노인협회는 "1945년 말까지 출생자들을 '동포 1세'로 취급해 보상하고, 영주귀국은 연령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시해달라"며 "1930년 전 출생자들을 우선 귀환시키되, 희망 가족과 동반 귀국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즉 희망하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영주귀국을 요구했지만, 한일 양국의 시범사업에서는 이 요구가 묵살됐다.

하지만 영주귀국 대상을 확대해달라는 동포들의 요구가 잇따르자 정부는 2007년 '(동포) 1세와 그 배우자, 장애인 자녀 1명'으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30여 년간 한국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는 4천400여 명이다.

이 가운데 1천900여 명은 숨지고, 일부는 사할린으로 되돌아가 현재 2천여 명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사할린한인협회는 현재 사할린에 3만여 명의 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동포 1세는 530여 명, 2세는 5천여 명이라고 밝혔다.

국회는 늦게나마 남은 이들의 영주귀국과 복지 등을 지원하겠다며 지난해 '사할린동포법'을 제정했고, 정부는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대한민국에서 동포들의 귀환을 법적으로 규정한 첫 법안이다.

이 법은 사할린 동포 지원정책 수립과 시행에 관한 국가의 책무, 영주귀국·정착 지원 법제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동반귀국 대상도 '직계비속 1인과 그 배우자'까지 추가 확대했다.

이 법에 따라 지난달 말부터 동포 260명이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을 순차적으로 밟고 있다.

시행 1년만에 '사할린동포법' 개정 요구 목소리 높은 이유는
◇ "영주귀국 대상 기준, 끝없이 이산가족 만들어"
그러나 사할린 동포들과 국내 시민단체들은 사할린동포법 역시 지원 대상을 여전히 제한한다고 비판한다.

박순옥 회장은 "'1945년 8월 15일까지 사할린에서 출생하였거나 사할린으로 이주한 한인'이라는 규정은 어떠한 역사적 근거도 없는 편의상 날짜로, 수많은 문제를 불거지게 했다"고 지적했다.

가령, 같은 강제징용 1세의 자녀임에도 '1944년생 형'은 영주귀국과 국적 취득을 했지만, '1946년생 동생'은 그 어떤 혜택이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사할린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사례가 가정마다 있을 정도라고 그는 주장했다.

박 회장은 "실제 징용대상이었던 동포 1세는 1900∼1930년대생으로 최초 영주귀국 당시인 1990년대에도 생존자가 많지 않았다"며 "결국 그들의 후손이 (법 지원의 주된 대상이지만) '1945년 8월 15일'이라는 의미 없는 기준과 '동반가족'이라는 제약으로 두 차례, 세 차례 상처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사할린 동포 1세가 사망한 경우 가족을 '동반'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가족은 영주귀국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박 회장은 그러한 사례로 2017년 블라디보스토크 동포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만났던 1923년생 고 김윤덕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냈다.

김 할아버지는 첫 영주귀국 당시 부부만 대상이 되자 아이들과 이산가족이 될 수 없어 꿈에 그리던 영주귀국을 포기했다.

지금은 사할린동포법이 시행돼 자녀 1명을 데려갈 수 있지만, 할아버지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그의 자녀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다.

이에 사할린 동포들은 사할린동포법의 '동포' 정의에서 "1945년 8월 15일이라는 기준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거나, '동반가족'을 '직계비속'으로 개정해 달라"고 요청한다.

동반가족을 '직계비속'으로 바꾸면 사할린 동포 1세가 사망해 가족을 '동반'할 수 없는 경우에도 그 가족이 영주귀국할 수 있게 된다.

박 회장은 영주귀국을 택하지 않고 사할린에 남은 동포들에게도 전후 주어지지 않았던 국적 선택권을 소급 적용해 현지에서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강제징용 1세는 징용으로 부모와 이별했고, 영주귀국 때문에 자식과도 이별해야 했으며, 눈에 밟히던 자식들을 이제 생의 끝에서 한 명이라도 데려갈 수 있게 됐지만, 그 자식은 또 그의 자식과 이별해야 한다"며 "끝없는 이산가족의 역사를 이제는 끝내달라"고 문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 정부 "시행 결과 토대로 시행령 개정 등 보완하겠다"
지구촌동포연대 관계자는 "사할린동포법의 취지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물어야 한다"며 "이 법이 사할린 동포들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법이라면 '동포 다수'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주귀국 대상으로 선정이 됐다가 1세가 사망해 귀국이 취소되거나, 배우자로 영주귀국했다가 1세 사망 후 홀로 살지만 그 자녀가 영주귀국 대상이 못 되거나, 부모가 일찍 사망해 영주귀국을 못 했는데 그들의 자녀도 여전히 영주귀국 대상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영주귀국 대상의 확대와 함께 현지에 정착한 동포들이 정체성과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난달 말 제20차 재외동포정책위원회를 열어 "사할린동포법의 시행 결과를 토대로 시행령 개정 등 입법적 보완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행 1년만에 '사할린동포법' 개정 요구 목소리 높은 이유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