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기조 속에서도 위험 요인 내재…미묘한 한중관계 재확인
서훈-양제츠, 종전선언 추진 합의했지만 대만 불씨도 확인
2일 중국 톈진(天津)에서 열린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외교담당)의 회담은 치열한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갈등 요인을 안은 채 협력의 접점을 찾는 한중관계의 미묘함을 보여줬다.

3일 청와대의 발표와 이 회담의 상황을 잘 아는 정부 고위 관계자가 밝힌 내용을 살펴보면 회담 결과는 주로 협력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한국의 요청에 중국이 응한 내용이 적지 않았다.

우선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종전선언과 관련, 중국은 지지를 표명하며 건설적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또 국내 요소수 부족 사태로 불거진 원자재 수급 문제에서 중국은 "적극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중국 측은 문화 콘텐츠 분야 교류·협력을 활성화하자는 한국 측 제안에 노력하겠다며 화답했다.

이와 같은 협력 논의는 현 국면에서 한중관계를 잘 관리해야할 상호 필요에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중국으로선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한 미국의 중국 포위, 서방의 인권 문제제기와 결부된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정부 고관을 대회에 파견하지 않는 것) 등과 관련해 한국의 선택이 중요해졌다.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를 필두로 미국이 아·태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대 중국 포위망'에 미국의 '혈맹'인 한국이 동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근린 외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는게 중평이다.

그와 더불어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반도체 강국인 한국을 자국 주도 공급망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 자유민주 진영의 중견국인 한국이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흐름에 동참하지 않도록 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한국 측 서훈-양제츠 회담 결과 발표에는 없었던 서 실장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지지 언급이 중국 매체 보도에는 등장했던 점, 공급망 협력에 대한 양 정치국원의 발언이 중국 측 매체에 비중있게 소개된 점 등에서 중국의 의중이 읽혔다.

한국도 중국이 압도적인 최대 교역국이라는 점 외에도,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 원자재 공급 등에서 현실적으로 중국의 적극적 역할과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대만 문제 등 미중간 갈등 요인은 상황에 따라 한중관계에도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확인됐다.

마침 톈진 회담이 열린 2일 서울에서 열린 제53차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대만해협'이 명시된데 대해 양 정치국원이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문구가 담겼을 때 외교부 대변인이 "관련 국가들은 대만 문제에서 언행을 신중해야 하며 불장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 것에 비해 절제된 대응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협력 위주의 분위기 속에서도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감으로써 한국이 대만 해협 문제에서 미국에 협력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이제 관심은 서 실장과 양 정치국원이 확인한 '협력 기조'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행되느냐에 쏠린다.

우선 문화 콘텐츠의 경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 속에 2016년부터 중국이 시행해온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이 최근 중국내 한국영화 6년만의 개봉 등을 계기로 완화하는 흐름이 분명히 감지되고 있다.

특히 내년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이런 추이가 더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한다.

하지만 좀 더 신중하게 지켜봐야할 분야도 있다.

종전선언만 해도 중국이 지지를 천명했지만 이번에 구체적인 문안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또 중국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견인하는 등 실제로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할지 또한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라는 것이 외교가의 시선이다.

아울러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답방도 양측이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현재의 코로나19 상황과 중국내 각종 정치 및 국제 일정 등으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성사될지 불투명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양국이 시 주석 방한 성사 전에라도 정상간 소통을 추진키로 하면서 이르면 내년 1월 영상 정상회담 또는 전화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다.

서훈-양제츠, 종전선언 추진 합의했지만 대만 불씨도 확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