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역학 지각변동…'선진국형 대선메뉴' 부동산稅 증세·감세, 대선 전면에
'양극화·코로나 불황'에 MZ세대 생활밀착형 이슈 부각
[세금대결] ① 지역프레임 균열 파고든 세금 공약 대선판 달군다
'세금'이 이번 대선정국의 전면에 부상했다.

어떤 세금 공약을 내느냐가 표심을 좌우하는 주요 잣대가 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값 급등과 맞물린 종합부동산세 공방이 그 계기가 됐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 선거 역학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과거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정치에 뿌리내린 지역 프레임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새를 생활밀착형 이슈가 파고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거대 양당이 영·호남의 표심 결집에 사활을 걸고 있고 아직 미완의 꿈인 '충청권 대망론'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대북 이슈를 중심으로 짜여진 이념프레임 문법도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은 분위기다.

세금이슈 자체를 정치문화 선진화로 직결시키기는 무리지만, 고질적인 지역·이념 구도에서 벗어날 출구가 생겼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미국·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의 선거 트렌드와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대별로는 지역·이념 구도에서 자유로운 'MZ세대'가 캐스팅보트로 부상하면서 증세·감세론을 대선판의 정중앙으로 끌어왔다.

양극화가 심화하고 코로나19 불황이 장기화하는 사회·경제적 그늘도 결국 유권자들의 '생활이슈형 민도'를 높이는 요인이 됐다.

◇ 선심성·이념성·퍼주기 탈피…먹고 사는 문제로
'정권 재창출론'과 '반문재인 결집론'이 충돌하는 이번 대선판에서 뜨거운 논쟁을 부르는 정책 테마는 바로 '세제 개혁'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현 정부의 세제에 메스를 들이대겠다고 벼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들고나온 국토보유세는 그의 전매특허 브랜드인 기본소득과 맞닿아 있는 공약이다.

거래세를 줄이되 소위 '비필수 부동산'에 대한 보유세를 인상해 0.17%에 불과한 실효 보유세를 1% 선까지 높여나가고, 그렇게 마련한 세수 전액을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분배해 조세 저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종합부동산세 폐지라는 '극약 처방'을 제시했다.

종부세를 '세금 폭탄'으로 규정하고 재산세와 통합하거나 1주택자에는 면제하는 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구상이다.

준조세 성격의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대폭 손봐 일부 지역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한 과중한 부담을 덜겠다고도 했다.

두 후보의 아이디어는 타깃이 뚜렷하게 엇갈리지만, 단순 선심성이 아니라 특정 지지층의 '먹고 사는 문제'에 확실히 어필한다는 측면에서 전략적인 공통점이 있다.

아울러 무상급식 폐지처럼 정치 성향에 따라 갈리는 이념 공약이나 2030세대의 외면을 받는 무조건적 '퍼주기' 공약과도 공히 거리가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2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747'(연평균 7% 고성장과 소득 4만 달러 달성, 선진 7개 국 진입) 어쩌고 뜬구름 잡는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진짜 논쟁적인 공약"이라며 "네거티브가 아닌 실질적 캠페인 대결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 '노란 조끼'에 데인 마크롱…트럼프 세제 뒤집은 바이든
세금 대결은 이른바 '선진국형' 선거의 한 단면으로 꼽힌다.

숨가쁜 개발도상 단계를 지나 어느 정도 계층 이동이 안정화된 사회에서 이목을 끄는 주제라는 점에서다.

복잡한 세제의 핵심을 캐치하고 여론을 형성할 만한 국민 저변의 높은 교육 수준도 배경으로 거론되는 것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한국과 비슷한 시기인 내년 4월 대선을 치르는 프랑스에서도 세금 문제가 휘발성 큰 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1980년대 사회당 정부가 도입한 부유세(ISF)를 지난 2018년 부동산자산세(IFI)로 축소 개편하면서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국정 지지율은 집권 초인 2017년 60%대에 달했으나, 사실상의 부유세 폐지에 민심이 폭발한 이른바 '노란 조끼' 시위 사태 이후 20%대로 추락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와 사회적 대토론 등 여러 차례 승부수를 던진 끝에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집권 여당은 이번 대선 정국에서 또다시 시험대에 오르는 분위기다.

감세·증세 대결은 미국 대선의 단골 메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레이스 당시 파격적인 부자 감세 카드를 들고나와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격전을 벌였다.

지난해 대선 때 조 바이든 민주당 당시 후보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부자 감세 폐지안을 전면에 내세워 승기를 잡았다.

상대적으로 과격한 부유세를 제시한 '진보의 아이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다른 후보 간의 설전은 민주당 경선의 하이라이트가 되기도 했다.

◇ 여야 "문제는 부동산稅"…세금도 시장 정상화에 방점
세금 대결의 이면에는 코로나19 시대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다.

팬데믹 불황을 돌파하기 위한 0%대 금리 장기화로 부동산·주식·코인 등에 돈이 몰리면서 자산 격차가 극심해졌고, 이에 대한 일종의 해법으로 세제 개편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적 요인으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겹친 모양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발표한 국민대차대조표에 따르면 가계의 주택 시가총액은 2015년 3천521조 원에서 작년 말 5천344조 원으로, 5년간 51.7%나 급증했다.

반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같은 기간 가구당 경상소득은 5천197만 원에서 5천924만 원으로 겨우 14%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벌이는 제자리니, 부동산세를 둘러싼 민심이 예민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이날 통화에서 "집이 있든 없든, 모든 국민이 부동산 문제로 홍역 앓이를 하고 있다"며 "대선을 앞둔 세금 대결의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여야 정치권도 '문제는 부동산'이라는 데 공감한다.

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공급에 대해 아쉬움을 말씀했다"며 "세금 논쟁은 사실상 부동산 논쟁의 연장선"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에게 정책 조언을 하는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도 "금리를 크게 올리면 집값을 잡을 수 있겠지만, 그러면 실물 경제가 같이 무너지니 세제를 손보려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남은 대선 기간 세금 대결 역시 부동산 시장 정상화라는 정책 목표를 겨냥한 방향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