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9일 대전 유성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연구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9일 대전 유성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연구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재벌과 기득권자에게 너무 유연한 것 아닌가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017년 3월 경선토론에서 경선 경쟁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같이 따져 물었습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과 사면 금지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이 후보의 질문에 "구속과 사면 불가 방침을 함께 천명하는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국가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이 후보는 "재벌 기득권에 편향돼 있다"며 문 대통령의 '유연성'을 공격했습니다.

이 후보는 같은달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 안보사안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후보는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전략적 모호성을 얘기할 수 있지만, 오히려 대선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뭔지 국민에게 밝히고 평가받아야 한다"며 문 대통령의 '유연성'을 역시 비판했습니다.

이 후보가 내년 예산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반영해달라는 요청을 전날 철회한 것과 관련해 여권에서는 이 후보의 '유연성'을 칭찬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당 선대위 공동총괄특보단장인 정성호 의원은 "철학과 원칙은 분명하지만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현실 여건에 맞게 유연하게 한다. 역시 이재명답다"고 평가했습니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더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면모를 보면서 개인적인 소회는 굉장히 생각이 유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한때 문 대통령의 '유연성'에 날을 세웠던 이 후보가 이제는 본인의 유연성을 내세우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것일까요.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최근 이 후보에게 이미지 전환이 필요하다는 전략보고서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후보의 '독불장군'식 리더십이 대장동 의혹 등을 거치면서 오히려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대선 후보 지지도를 물은 결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지율 42%를 기록한 반면 이 후보는 31%에 머물렀습니다.

야당은 이 후보의 전국민 재난지원금 철회가 유연성을 보인 것이 아니라 "현실성 없는 정책을 툭 찔러보고 여론의 눈치를 보는 장난을 치고 있다"(임승호 국민의힘 대변인)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후보가 경기지사 시절 추진한 일산대교 무료화가 최근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것도 야당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전국민 재난지원금 철회에 청와대가 관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김부겸 국무총리가 앞장서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반대한 것에는 청와대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재난지원금 문제와 이 후보의 전국민 대상 지급 철회에 대해 "청와대가 이런 문제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지시하고 이런 단계가 아니다"라면서도 "국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나은 공약이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굉장히 환영할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여권 관계자는 "이번 철회는 이 후보의 결단으로 보여야 하는 만큼 청와대가 관여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앞뒤 상황이 어찌됐든 이 후보가 대선 전략에 수정을 가하고 있는 것 만큼은 분명해보입니다. 이 후보가 과거 문 대통령에게 했던 "너무 유연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