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전문가 "공약으로 평가받아야 할 대선후보가
정부에 당장 돈 풀라고 요구하는 건 처음 봤다"
여당은 지원사격…송영길 "세수 충분, 뒷받침할 것"
< 어르신 표심 공략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가 1일 서울 효창동 대한노인회를 찾아 김호일 회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범준  기자

< 어르신 표심 공략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가 1일 서울 효창동 대한노인회를 찾아 김호일 회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범준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의사를 거듭 밝히면서 ‘매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대선후보가 집권 후 정책을 제시하기에 앞서 이례적으로 현 정부를 압박해 현금 살포성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예산심사 과정에서 이 후보의 제안을 ‘지원 사격’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다만 당내 의원 간 입장 정리가 되지 않은 데다 국민의힘이 “후안무치한 매표행위”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논란은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측 “기재부 설득할 것”
이 후보가 1일 “국민 여론이 형성되면 따르는 게 관료와 정치인이 할 일”이라고 언급한 건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반대했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야당인 국민의힘을 겨냥한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달 29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힌 뒤 31일엔 “국민 1인당 최하 30만~50만원 정도는 추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의 말처럼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내년도 예산에 증액해 반영하려면 기재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는 이날 기재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는 질문에 “초과 세수도 있어서 합리적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내년 예산 중 지역화폐 예산 증액과 소상공인 손실보상 하한선 상향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재난지원금 밀어붙이는 李…野 "현금 살포는 후안무치 매표행위"

지난 7월 5차 재난지원금 결정 때도 민주당은 전 국민 지급을 주장했다가 기재부의 반대에 소득하위 88% 수준으로 물러선 적이 있어 당·정 갈등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 캠프에서 수석대변인을 맡았던 박찬대 의원은 “재정당국은 곳간을 지킨다는 개념이 강하신 분들이고, 정치 지도자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곳간을 여는 사람들”이라며 “곳간을 지키는 사람들을 설득하겠다”고 했다.
與 지도부 “적극 검토” 지원
여당 지도부는 이 후보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추가 세수가 예상보다 10조원 이상 더 걷힐 예정인데, 국민들에 대한 지원이 충분히 이뤄지도록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윤호중 원내대표도 “이 후보가 던진 화두 중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손실보상 대상 확대 등 당면 과제가 있다”며 “정책의총을 통해 당론을 신속히 모으고 제도화에 나설 수 있도록 각별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국민 1인당 30만~50만원 지원금을 단순 계산해보면 15조~25조원가량의 예산이 필요하다.

다만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단계에 진입한 상황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금을 살포하는 게 적절하냐는 당내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낙연 전 대표 측근인 오영훈 의원은 “전 국민이냐, 더 어려운 분에게 더 두텁게 지원해야 하느냐의 논쟁은 계속 이어져왔다”며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고, 정부로선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이 향후 논의 과정에서 재정당국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자신을 키즈카페 사장이라고 소개한 한 자영업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코로나19로 인해 1억원이나 되는 돈이 빚으로 남았는데 손실보상금은 700만원 남짓”이라며 “이런 현실인데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살포한다니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야당 “금권선거 그만둬라”
대선후보가 대통령 취임 후 공약이 아니라 임기가 남은 현 정부를 압박해 당장 정책을 추진하려고 시도하는 상황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의원 신분도 아닌 이 후보가 여권의 대선후보라는 이유로 무조건 당에서 입법·예산 지원을 받는 게 의회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야권 대선주자인 홍준표 의원은 “현금을 살포하는 후안무치한 매표 행위”라고 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몇 번의 선거에서 돈을 뿌리면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정치권이 현금 살포 정책을 또 시도하는 것”이라며 “공약으로 평가받아야 할 대선 후보가 현 정부에 당장 돈을 풀라고 요구하는 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미래 권력에 정부가 알아서 기라는 뜻이냐”며 “벌써 대통령이라도 된 듯 권력부터 행사하는 모양이 보기 거북하다”고 했다. 여당 내에서도 이 후보가 당과 상의 없이 정책 방향을 결정해 혼란을 부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4선 중진인 우상호 의원은 “당에서 오랫동안 정부와 논의했던 내용들에 대해 (이 후보가) 결정된 듯이 혹은 요구하듯이 해버리면 당이 굉장히 어렵다”며 “본인이 집권한 다음에 하시겠다는 건 뭐라고 말씀을 안 드리지만, 과도기에 생기는 문제는 조금 더 잘 관리하실 필요가 있다고 충고하고 싶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고은이/전범진 기자 koko@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