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공 생활로 왼팔 장애…'흙수저' 딛고 검정고시·사법고시까지
탄핵정국서 '사이다' 행보로 전국구 발돋움…선거법 무죄확정으로 기사회생
변방의 장수에서 與 대선후보로…정권재창출 나서는 이재명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10일 선출된 이재명(57) 경기지사는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났다'는 표현이 맞아떨어질 정도로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을 걸어왔다.

소년공 시절을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종종 회고할 정도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흙수저 출신의 어려움을 딛고 주경야독 독학으로 변호사를 거쳐 경기도 성남에서 지역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등 입지전적 인생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이번이 대권 재수이다.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변방의 벼룩이 소를 잡겠다"며 대권에 도전, 당내 경선에서 '의미 있는 3등'으로 훗날을 기약했던 그는 그 사이 경기도지사를 거치며 체급을 키웠다.

정치권에서 '전투형 노무현'이라는 평가를 만들어낸 특유의 '사이다' 직설 화법과 승부사적 기질이 '변방의 장수' 이재명을 키워낸 자양분이었다.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0선' 비주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컸지만, 무상 교복과 기본소득 등 논쟁적인 정책 과제를 성과로 바꿔내는 뚝심을 지켜온 마침내 정권 재창출의 선봉장으로 발돋움했다.

변방의 장수에서 與 대선후보로…정권재창출 나서는 이재명
◇ 화전민 빈민층 출신…盧 만나 인권변호사의 길로
경북 안동 화전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만 12살 때 경기 성남으로 이주, 영세공장에서 소년공 생활을 했다.

시계공장에서는 스프레이 작업을 하다가 후각이 상했고,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는 프레스에 왼팔이 끼이는 골절상을 당해 팔이 구부러진 평생 장애를 안게 됐다.

그는 2017년 대선 출마 선언을 당시 일했던 성남의 시계공장에서 하기도 했다.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주경야독'으로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장학금을 받고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고, 1986년 사법고시(연수원 18기)에 합격했다.

여유가 없는 생활 속에서도 꾸준히 써온 일기가 최근 경선 TV토론회에서 공개됐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1980년 7월에는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공부하기가 싫어진다.

그러면서도 평생 공돌이로 썩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적는가 하면,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1984년 2월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재명아 정신 차려라"라고 써놓기도 했다.

이 후보에게 있어 대학 시절 비로소 알게 된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이 정치 입문 결심의 계기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는 "5·18은 개인적 영달을 위해 살아갔던 저를 공평한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살도록 바꿨다", "저를 사회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 건 5월 광주로, 광주는 제 사회적 어머니"라고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사법연수원 시절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들은 것이 노동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하는 계기가 됐다고 이 후보는 회고했다.

연수원 동기로 만난 4선의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내내 정치역정을 함께 하는 동지 관계가 됐다.

변방의 장수에서 與 대선후보로…정권재창출 나서는 이재명
이 후보는 '성남시민모임'을 창립해 이끌며 2000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2002년 파크뷰 특혜분양사건 당시에는 당시 성남시장과의 전화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가 공무원자격사칭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4년 성남 구시가지의 대형 병원들이 문을 닫으면서 의료 공백이 심각해지자 직접 시장이 돼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노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는 2005년 8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투신했으나 첫 도전인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른바 '미키루크'로 알려진 이상호 전 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과 함께 정동영 후보의 외곽 조직인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을 이끌었다.

2008년 총선에서 우여곡절 끝에 성남에 민주당 공천을 받았지만 낙선했다.

이후 '체급'을 낮춰 2010년 성남시장에 도전해 당선된 뒤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변방의 장수에서 與 대선후보로…정권재창출 나서는 이재명
◇ 성남시장 때 '모라토리움' 파격 주목…"朴탄핵" 돌직구로 존재감
첫 시장 임기 시작 11일 만에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등 파격적인 시정 운영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재선까지 거치며 SNS상의 열성적 지지층을 중심으로 '전국구 정치인'으로 급부상했고 야권의 잠룡으로 몸값을 높이기 시작했다.

정부와 각을 세워가며 추진한 무상 교복, 공공산후조리 지원, 청년 배당 등 보편적 복지 사업은 타 지자체로 퍼져나가며 자타공인 그의 정책 브랜드가 됐다.

2016년 6월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발, 광화문광장 앞에서 11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적도 있다.

변방의 장수에서 與 대선후보로…정권재창출 나서는 이재명
이 후보는 같은 해 11월 시작된 촛불 정국에서 민주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취 문제를 두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탄핵을 외치는 돌직구 행보와 대중의 정치적 갈증을 일거에 해소하는 사이다 발언으로 견고한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하며 일약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SNS를 통해 자신이 직접 올리는 막힘없고 강렬한 어법의 메시지는 여의도의 거물급 정치인들을 제치고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최대 무기였다.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한 그는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대선 및 경기지사 경선에서 친문 진영과 경쟁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은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 과정에서 '혜경궁 김씨', '형수 욕설', '여배우 스캔들' 등 각종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변방의 장수에서 與 대선후보로…정권재창출 나서는 이재명
◇ 경기도지사로 추진력 과시…선거법 재판 끝 기사회생
경기도정을 이끌면서는 '기본소득'을 비롯해 기본금융, 기본주택 등 자신의 기본 시리즈 정책 어젠다를 하나씩 구체화하며 대권 재도전의 칼날을 갈았다.

때로는 정부 재정 당국과 각을 세우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 보편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등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지 않는 신천지 교단에 강제 역학조사를 지시하며 강경 대응으로 나서는가 하면, 도내 계곡 곳곳에 들어차 있던 불법 시설물들을 모두 철거·정비하는 등 저돌적인 행정가의 면모도 보였다.

이 후보는 '친형 강제입원'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2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으며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에 내몰렸다.

하지만 작년 7월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고 10월 무죄가 확정되면서 족쇄가 풀렸다.

다만 당시 판결에 참여, 무죄 의견을 냈던 권순일 전 대법관과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것은 본선에 나서는 이 후보로서는 난처한 지점이다.

그를 정치인으로서 이름을 알리게 한 성남시장 시절의 대장동 사업을 둘러싼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하면서다.

이 후보는 피아노 전공의 부인 김혜경 여사와는 변호사 시절이던 1990년 같은 교회에 다니던 셋째 형수의 소개로 만났다고 한다.

약 1년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변방의 장수에서 與 대선후보로…정권재창출 나서는 이재명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