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법 주무부처 장관마저 "말이 안된다고 반대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이 ‘언론 옥죄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고 비판했다. 언론중재법 주무부처 장관인 그는 “청와대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황 장관은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정부가 할 일은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황 장관이 언론중재법 개정에 대해 공개적인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처음 더불어민주당 법안을 봤을 때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며 “‘이렇게 하면 큰일난다’고 반대했다”고 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은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본 대상이 언론사에 손해액의 최대 다섯 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허위·조작 개념이 불분명한 데다 명예훼손죄로 이미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언론 보도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가 많다.

황 장관은 “청와대와 정부는 법안이 통과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굳이 언론과 대척점을 세우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황 장관은 “만약 법안이 통과되면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에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규정을 넣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판사를 만나서 실제 이 법으로 처벌이 가능할지 알아보고, 언론인들을 만나서 염려하는 부분을 듣고, 언론보도 피해자들에게도 문제점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 무조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올리겠다는 태세다. 신현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여야 8인 협의체 활동 종료 시한인) 26일까지 최선을 다해 협의하는 게 여야가 합의한 내용”이라며 “27일 통과시켜야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시점을 못 박았다. 여야가 함께 구성한 ‘8인 협의체’는 독소조항 삭제 여부를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언론재갈법’이 있었다면 ‘대장동 게이트’ 같은 보도는 원천 봉쇄됐을 것”이라며 강행처리 의사를 내비친 민주당에 반발했다.

한국신문협회 등 언론 7개 단체는 언론중재법 개정 논의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언론자율규제기구’ 설립을 제안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가짜뉴스’의 문제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 나타나는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정부가 ‘가짜뉴스’의 개념을 정의하고 이를 징벌적으로 처벌하겠다는 나라는 전 세계 민주국가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론중재법 개정 반대 목소리만 낼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언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자정 노력을 기울이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언론 7단체는 △자율규제기구 설립 △팩트체크에 의한 심의·평가 전달 △문제 기사의 열람차단 청구와 제재 등을 제시했다.

뉴욕=강영연 특파원/고은이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