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반발해 ‘협박성’ 담화를 연이어 내놓던 북한이 정작 훈련이 시작되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훈련은 예년에 비해 참여 병력 규모가 ‘12분의 1’로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한의 남침을 격퇴한 뒤 반격에 나선다는 훈련의 시나리오는 유지됐습니다. 앞선 ‘말폭탄’과 상반되는 북한의 침묵이 북한 지역 점령까지 상정한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총집결한 한·미의 전략 자산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2018년 2월 청와대를 방문한 북측 대표단이 접견장에 먼저 입장해 문재인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허문찬 기자
2018년 2월 청와대를 방문한 북측 대표단이 접견장에 먼저 입장해 문재인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허문찬 기자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15일 “한·미 동맹은 코로나19 상황, 연합방위태세 유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 지원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21년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을 16일부터 9일간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0일부터 나흘 간 사전연습 격인 위기관리참모훈련(CMST)이 진행되며 사실상 연합훈련이 시작됐다는 관측에도 훈련 실시 여부에 대해 끝까지 함구하던 군 당국이 본훈련 시작 하루 전에서야 공식 확인한 것입니다. “이번 훈련은 연례적으로 실시해 온 방어적 성격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의 지휘소훈으로 실병기동훈련은 없다”면서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워게임' 어떻게 진행될까

현재 실시되고 있는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은 기존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2019년 폐지된 뒤 신설된 훈련입니다. 2018년 미·북 비핵화 협상이 급진전되며 남북한 관계를 중시하던 문재인 정부와 훈련의 비용을 걱정하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행정부는 3대 대규모 연합훈련이던 키리졸브(KR)·독수리훈련(FE)·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모두 폐지하는데 합의합니다. 특히 KR과 UFG는 폐지 후 현재의 전·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으로 명맥을 유지한 반면 대규모 실기동훈련(FTX) 중심이던 독수리훈련은 완전히 폐지하고 대대급 이하의 연중 실기동훈련만 실시하기로 합니다.
지난해 3월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미군 헬기가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3월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미군 헬기가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후반기 연합훈련은 기존의 UFG와 마찬가지로 전시 상황을 가정한 ‘워게임’ 형식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지휘소훈련(CPX)으로만 진행됩니다. ‘방어’라는 이름의 1부와 ‘반격’이라는 이름의 2부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북한은 여기서도 특히 2부 훈련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격 훈련은 북한 급변사태를 가정하고 한·미 연합군이 북한 지역을 점령한다는 시나리오를 가정합니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은 지난 10일 내정자 신분일 당시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내부가 완전히 혼란스럽고 주민들이 곤란하니 우리가 점령해서 지역 주민들의 안정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라며 “(북한 지도부) 참수 훈련까지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내용들이 반격 시나리오에 들어간다”고 밝히기도 했죠.

대규모일때나 '12분의 1'일때나 변함없는 北반응

북한은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와 관계없이 항상 반발해왔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일 “우리는 규모나 형식에 대하여 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지난 3월 전반기 훈련을 앞두고 김여정이 내놓은 담화에도 들어간 문구입니다. 훈련의 규모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 취소하라는 일종의 협박입니다.

김여정은 지난 10일 연합훈련 사전연습 시작일에 맞춰 더욱 수위를 높여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며 주한미군 철수까지 주장했습니다. 다음날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은 “우리의 선의에 적대행위로 대답한 대가에 대해 똑바로 알게 해줘야 한다”며 대놓고 무력 도발까지 시사합니다.

북한은 한·미의 훈련 규모 대폭 축소에도 이달 들어서만 세 번의 대남 비방 담화를 내놨습니다. 통상 작전사령부 예하 부대에는 대규모 병력이 증원되지만 이번 훈련에선 사단급 이하 부대의 병력 증원이 최소화됐습니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일 “군이 이번 훈련에 정상 대비 절반 수준인 약 200명 증원하는 계획을 세웠다가 12분의 1 수준으로 축소했다”고 밝힌 바 있죠.

통상 연합훈련 때 증원 병력은 400~500명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엔 3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증원 인력이 너무 줄어 ‘무늬만 훈련’이라는 비판을 받은 지난 3월 훈련 때도 증원 인력이 100여 명이었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더 준 것입니다.

2016년 8월 문재인 정부 출범 전 마지막 UFG 훈련에 참여한 한국군 5만여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때는 해외에서 증원된 병력을 포함해 2만5000여명의 미군과 각종 야외훈련도 진행됐습니다.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훈련 규모가 줄었지만 북한의 반발은 줄지 않은 것입니다.

北, 또 무력도발 나설까

북한이 지난 3월 25일 발사한 단거리 탄도 미사일 추정 발사체.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지난 3월 25일 발사한 단거리 탄도 미사일 추정 발사체.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무력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만 많은 전문가들은 무력 도발 시점이 훈련이 끝나는 오는 26일 이후가 될 것이라고 관측합니다. 북한은 그동안 연합훈련이 끝난 뒤 무력도발에 나섰습니다. 지난 3월 전반기 연합훈련 당시에도 훈련이 끝난 뒤인 21일과 25일 각각 단거리 순항미사일과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습니다. 지난해 3월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시점도 연합훈련이 마무리된 뒤인 이달 21일과 29일이었습니다.

북한의 이같은 날짜 선정은 한·미 양국의 전략 자산이 집중되는 훈련 기간에 도발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미 군 당국은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연합훈련 기간 중에도 각종 감시·정찰 장비 등을 총집결합니다. 특히 평소에 한반도에 배치되지 않던 미군 정찰기들도 연합훈련 기간 중에 한반도 상공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전 반경이 한반도 면적의 약 5배에 이르는 100만㎢에 이르는 미 공군 정찰기인 E-8C 조인트스타스가 지난 16일과 이날 서해 상공에 출현했고, ‘코브라볼’이라 불리는 RC-135S는 동중국해 상공에 등장했죠. 코브라볼은 원거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발사 동향 등을 감시하는데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10일 김여정 담화 직후 북한이 남북 통신연락선을 차단한 만큼 2차 도발로는 김여정이 지난 3월 이미 예고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나 금강산관광국 폐지 등 ‘저강도 도발’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선 거론됩니다. 미국을 크게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지난 전반기 연합훈련 때와 마찬가지로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과 지난 1월 열린 열병식에서 신형 SLBM을 공개했지만 아직까지 시험 발사는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다만 북한이 미국이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SLBM을 발사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