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 사진=뉴스1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 사진=뉴스1
여당이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며 언론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내년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언론에 '재갈 물리기'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데요. 여권 국회의원들은 언론중재법을 찬성하며 가짜뉴스를 근거로 내세우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한겨레 기자 출신이자 범여당인 열린민주당의 김의겸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과 관련 "최근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가 가짜다'라고 주장했는데 거기에 동조한 언론들이 개표기를 만든 회사로부터 몇조 원에 이르는 소송을 (당)하고 있다"며 "우리가 아무리 강하게 때린다고 하지만, 가장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미국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언론사가 가짜뉴스를 보도한 탓에 특정 기업으로부터 소송을 당했고, 미국은 언론에 대한 규제가 더 강하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입니다.

김 의원이 언급한 '개표기 회사'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개표기를 공급한 도미니언시스템을 말합니다. 지난해 미국 대선 결과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패배한 트럼프 진영은 개표기 조작으로 부정투표가 이뤄졌다는 주장을 펼쳤는데요. 이후 도미니언시스템은 해당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한 언론사인 폭스뉴스에 16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제기했습니다.

김 의원의 주장과 달리 도미니언시스템이 문제로 삼은 것은 가짜뉴스가 아닌 '명예훼손(defamation)'입니다. 미국은 언론뿐 아니라 전 영역에서 거짓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있는데요. 형법에 명예훼손죄가 있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민사 소송만 가능합니다. 한국은 사실의 경우에도 명예훼손이 인정되는 등 미국보다 규제가 강합니다.

더구나 해당 사건은 판결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폭스뉴스는 "언론의 보도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 근거해 보호돼야 한다"며 재판의 기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기 때문에 판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단하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김 의원이 언급하지 않은 '팩트'도 있습니다. 도미니언시스템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 정치인에 대해서도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추진하는 가짜뉴스법에는 유튜브, SNS 등 1인 미디어가 제외됐습니다. 이에 따라 SNS 등을 통한 정치인 발(發) 가짜뉴스는 이 법으로 손해배상이 불가능합니다. 열린공감TV 등 친여(親與) 유튜브 채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해 '아니면 말고' 식 의혹을 제기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김승원 민주당 의원 역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 등에 다 있다"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과 관련해 고등학생이 워싱턴포스트(WP)에 3000억원을 청구해서 이겼다. 합의해서 손해배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국에는 언론에 의한 피해를 구제하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언론중재법에 따라 정정보도·반론보도 등을 청구할 수 있고,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조정·중재도 가능합니다. 손해배상 청구는 물론 형법상 명예훼손 고발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여당의 '언론 옥죄기' 속내를 반영한 것이란 비판이 나옵니다.

김 교수는 "수용자 입장에서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기준은 천차만별"이라며 "팩트의 진실성 여부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비록 가짜뉴스로 인한 침해가 있다 하더라도 언론의 자유는 훨씬 큰 공익"이라며 "언론의 자유라는 본질적이고 커다란 공익이 위축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백제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이재명 경기지사 측에서 '이 지사가 지역감정을 꺼내 들었다'고 보도한 시사주간지 기자를 허위사실 공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습니다. 이에 이낙연 캠프 오영훈 수석대변인은 이 지사를 향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건 아닌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는 여당에 되묻고 싶은 말입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