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 / 사진=연합뉴스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 초기 확산된 곳이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질서 있는 처치나 진료가 안 되고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9~20일 이틀간 뱉은 말이다. 여당에서는 윤 전 총장의 발언을 두고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설상가상 30%대를 웃돌던 지지율까지 10%대로 하락한 가운데, 이제는 '처가 리스크'가 아닌 '윤석열 리스크'가 가시화되는 모양새다.

與 "尹, 지역 갈라치기 하지 말라" 일제히 규탄

윤 전 총장은 지난 20일 '윤석열이 듣습니다'라는 민생 행보의 일환으로 대구를 방문했다. 보수 심장부의 환심을 사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날 윤 전 총장은 대구를 한껏 치켜세웠다. 그는 대구 동산병원을 찾아 "작년 2월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의료진과 시민들의 노력을 지원해주기는커녕 우한처럼 대구를 봉쇄해야 한다는 철없는 미친 소리까지 막 나와 대구 시민들의 상실감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초기 확산된 곳이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질서 있는 처치나 진료가 안 되고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대구에서 애를 많이 썼다"며 "티 안 내고 당연히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방역에 협조) 한 것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윤 전 총장의 "코로나 초기 확산이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민란'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발언은 결국 큰 파장을 일으키고 말았다. 민주당에서는 "특정 지역을 정쟁 도구로 삼았다"며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이낙연 전 대표는 윤 전 총장의 발언 이후 즉각 '윤석열 씨, 지역 갈라치기가 큰 정치입니까' 제하 입장문을 내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의 말씀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망언"이라며 "우리는 작년 초 코로나19가 대구에서 확산됐을 때, 온 국민이 하나가 된 것을 기억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당시 국민께서는 연대와 협력만이 코로나 극복의 해법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셨다. 대구는 연대와 협력의 자랑스러운 상징이 됐다"며 "윤석열 씨는 그런 대구를 다른 지역과 갈라쳐 지역감정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민들께서 몸소 실천하신 연대와 협력, 상생과 통합의 정신을 깎아내리며 정쟁의 도구로 삼으려 했다"며 "아무리 정치를 이제 시작하신 분이라지만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형편이 급하더라도 정치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 사진=뉴스1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 사진=뉴스1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이날 '윤석열 후보, 대구를 악용해선 안 됩니다' 제하 입장문을 내고 "대한민국 대통령을 하겠다는 분이 맞나"라며 "대구로 몰려든 자원봉사단과 전국에서 답지한 구호 물품을 저는 또렷이 기억한다. 대구 시민과 함께했다는 그 자부심으로 이를 악물고 1년을 넘게 코로나와 싸워왔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민과 대구의 눈물겨운 노력이 없었다면 K-방역은 없다"며 "대구로 피어난 국민 통합의 정신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야 되겠나. 정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김두관 의원은 "윤석열 씨 주장대로면 당시 코로나 확산이 광주나 부산, 서울에서 벌어졌다면 민란이 일어났을 거란 얘긴데 이 지역을 잠재적 민란의 진앙으로 규정하느냐"라고 공격했다.

강병원 최고위원도 "참 끔찍한 말"이라며 "이젠 망국적 지역주의라는 저열한 망령을 소환해 국민을 모독하고 분열시킨다. 이것은 정치가 아닌 5공 시절에나 보던 술수이고 협잡"이라고 힐난했다. 김남국 의원 역시 "코로나19를 어렵게 이겨낸 대구 시민을 위로하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표현이 다른 지역에 대한 비하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지탄했다.

'주 120시간' 발언에 與 "쌍팔년도에서 오셨나" 맹공

윤 전 총장은 지난 19일 언론 인터뷰에서 "현 정부는 주52시간제로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지만, 일자리 증가율이 (지난해 중소기업 기준) 0.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며 "주52시간제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 52시간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라며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윤 전 총장의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라는 발언도 민주당의 먹잇감이 됐다. 그는 "여당이 왜곡하고 있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가라앉을 줄 모르는 분위기다.

이낙연 전 대표는 "윤석열 씨가 주 120시간 근무 허용을 주장하고 나섰다. 일주일 내내 잠도 없이 5일을 꼬박 일해야 120시간이 된다"며 "아침 7시부터 일만 하다가, 밤 12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7일 내내 계속한다 해도 119시간이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윤석열 씨는 설명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씨는 말씀하기 전에 현실을 제대로 보고 생각을 다듬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두관 의원은 "정말 점입가경이다. 주 120시간은 주 7일 근무를 한다 해도 1일 17시간"이라며 "1944년 일제에 끌려간 조선인 3000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도주할 정도로 참혹했다는 스미토모 회사 탄광의 근무시간보다 더 길다"고 쏘아붙였다. 이어 "아이가 말하기 전에 내는 소리를 옹알이라고 한다. 윤 전 총장의 정치 언어는 아직 말도 제대로 떼지 못한 옹알이 수준"이라며 "52시간제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과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강병원 최고위원도 "윤 후보는 타임머신을 타고 쌍팔년도에서 오셨냐"라며 적어도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 나라의 국민을 책임지겠다'며 대선에 나온 사람이라면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서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한 통합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언제까지 밤샘 수사하면서 피의자들을 달달 볶던 검사 마인드, 꼰대 마인드로 세상을 보려 하냐"고 규탄했다.

이에 윤 전 총장은 민주당이 "말의 취지는 외면한 채 꼬투리만 잡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저는 검사로 일하면서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해 근로자를 보호하려 힘썼다. 당연하게도, 부당노동행위를 허용하자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 "주 120시간을 근무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이야기며 제게 그 말을 전달한 분들도 '주52시간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데 따른 현장의 어려움'을 강조한 것이지 실제로 120시간씩 과로하자는 취지가 전혀 아니었다"라고 강조했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돌아다닐수록 표가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며 윤 전 총장이 잇따른 구설수를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7~18일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19.7%를 기록해 10%대를 나타냈다. 30%대를 웃돌던 이전 지지율에 비해 대폭 하락한 수치다.

국민의힘 입당, 범야권 단일화 등 지지율 반등을 위한 카드가 남아있는 가운데, 윤 전 총장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