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가맹점·납품사에도 단체협상권 부여"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선거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인 이재명 경기지사(사진)가 “하청기업과 납품업체, 대리점, 가맹점, 소상공인 등 갑을관계의 ‘을’에 단체결성 및 협상권을 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에 소속된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들도 사실상 노동조합을 결성해 단체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자영업자들이 카드사나 배달 플랫폼 사업자에 수수료 인하를 압박하거나, 한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납품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등 사실상 담합에 가까운 행동이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을에 단체결성·협상권 부여”

이 지사는 18일 경기도청에서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1호 공약인 ‘공정성장’ 관련 정책을 발표했다. 이 지사가 설명한 공정성장은 이른바 ‘을’로 분류되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단체결성 및 단체협상권을 부여하고, 공정거래위원회 권한을 강화하는 한편 불법행위에 대한 징벌배상을 도입해 사회적 공정성을 개선하면 경제성장률도 상승할 것이라는 개념이다. 이 지사는 “현행법은 한 대기업에 납품하는 여러 중소기업이 모임을 형성하는 것조차 칸막이로 막고 있다”며 “납품 단가나 공급 물량, 상가 보증금 등 우리 사회 을들을 가로막는 핵심 불공정을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의 격차를 교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의 경우 아직 도입하기 이르다는 지적이 있어 제외했다”고 덧붙였다.

이 지사의 공약은 그간 여권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개인사업자의 근로자 지위 인정’과 일맥상통한다. 공정위는 지난해 가맹점주로 구성된 단체의 협의 요구에 본사가 의무적으로 임해야 하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제출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유사한 내용의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야당 반대로 무산됐다.

공정 관련 주무부처인 공정위의 권한과 규모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 지사는 “공정거래법상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의 고발이 없으면 경찰·검찰이 수사와 기소조차 진행하지 못하는데, 정작 책임을 가진 공정위의 조사 인력은 100여 명에 불과하다”며 “지방정부에도 불공정거래 행위를 고발할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공정위 인력과 권한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구조개혁은 미흡”

이 지사는 신재생에너지·항공우주·바이오 등 신산업 육성 및 인프라 투자 확대를 위해 기후에너지부와 대통령 직속 우주산업전략본부, 데이터전담부서를 신설하고 관련 투자 규모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주요 공약이 문재인 정부의 ‘K뉴딜 정책’이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과 비슷하다는 지적에 이 지사는 “정책은 아이디어 경진대회가 아니다”며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이 과정에서 이 지사는 소득주도성장 등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불균형 완화를 위한 정책이 역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저임금을 끌어올려 소득 분배를 개선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은 사실상 임금소득주도성장”이라며 “정부가 임금 부분에 집중하다 보니 한계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늘어나 갑을이 아닌 을병 간 충돌이 커지고 정책도 자리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野 “이자율 규제, 금융시장마저 훼손”

야당 등 정치권에서는 이 지사가 추진하는 강력한 규제정책이 공정성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시장의 침체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시장 내 계약이나 구조에 의해 형성된 지형과 가격에 개입하면 시장 참여자들이 이에 순응하기보다는 시장 자체를 떠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지사는 지난 1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면 1호 명령으로 대부업 이자율을 최대 연 10%까지 낮추겠다”고 말했다. 이에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최고금리를 4%포인트 인하하자 대부업 이용자 수는 절반으로 줄어든 반면 불법 사채 이용자는 50% 급증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엉망으로 만든 것처럼 금융시장마저 훼손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도 이 지사는 배우 김부선 씨와의 스캔들 논란과 형수 욕설 사건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언론, 검찰, 정치권 모든 기득권에 맞서 싸우며 완벽하리만큼 자신과 주변을 관리해왔다”며 “개인사가 아닌 공직자로서 잘못한 게 있는지 봐달라”고 말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