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참전해 국군과 유엔군 100여명을 사살한 공로로 중국 공산당 최고훈장 '7.1훈장'을 받은 차이윈전./ 중국 CCTV방송 화면 캡처
6.25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참전해 국군과 유엔군 100여명을 사살한 공로로 중국 공산당 최고훈장 '7.1훈장'을 받은 차이윈전./ 중국 CCTV방송 화면 캡처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의미가 남다릅니다.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방탄소년단(BTS)의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입니다. 밴플리트상은 미국의 한·미 친선협회인 코리아소사이어티가 한·미 관계에 기여한 인물들에게 주는 상입니다. 한국 가수가, 한·미 관계 개선에 대한 공로로, 한·미 양국이 함께 싸운 6·25전쟁 70주년에 내놓은 어쩌면 당연한 수상 소감이었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10월 밴 플리트 상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유튜브 캡처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10월 밴 플리트 상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유튜브 캡처
그런데 중국 누리꾼들이 이 발언에 격분합니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희생을 무시하는 발언’, ‘국가 존엄을 깎아내리는 발언’이라는 게 그 이유입니다. 중국 SNS 웨이보의 BTS 공식 계정에는 BTS를 공격하는 무차별적인 욕설 테러가 이어집니다.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BTS 발언이 중국 네티즌을 격노케 했다”는 제목으로 오히려 이를 부추깁니다. 국제적인 논란으로 비화하자 후시진 환구시보 편집인은 “중국 누리꾼은 온라인에서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지만 한국 주류 언론은 모두 중국 누리꾼의 반응을 선정적으로 보도했다”며 논란의 책임을 한국 언론에 떠넘깁니다.

중공 100주년…'항미원조' 강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인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시진핑 국가 주석 겸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가 경축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인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시진핑 국가 주석 겸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가 경축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25전쟁 70주년이던 지난해 BTS에 생트집을 잡던 중국은 올해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일은 중국 공산당(중공) 100주년이었습니다. 중공 창당일은 7월 1일이 아닌 7월 23일이지만, 마오쩌둥이 1938년 “올해 7월 1일은 중국공산당 건립 17주년 기념일”이라고 언급한 것 때문에 1일을 창당기념일로 기념합니다. 중공에서 신격화한 마오쩌둥의 오류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마오쩌둥이 입던 ‘인민복’ 차림으로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올라 “중국 인민은 다른 나라를 괴롭히거나 압박하며 노예화한 적이 과거에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어 “누구라도 중국을 속이거나 압박하거나 노예로 삼겠다는 망상을 품는다면 14억 중국 인민이 피와 살로 쌓아 올린 강철 만리장성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 100주년에 이틀 앞선 지난달 29일, 시 주석은 2018년 사망한 차이윈전에게 중공 100주년을 맞아 신설한 당 최고 훈장인 ‘7·1훈장’을 수여합니다. 중국 관영방송 CCTV는 “1951년 박달봉 유격전에서 적군 100여 명을 죽였고, 피를 뒤집어쓴 채 혼자 남을 때까지 싸웠다”며 훈장 수여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박달봉 전투는 1951년 5월 경기 포천시 박달봉 일대에서 국군이 미군·캐나다군과 함께 중공군과 맞서 싸운 전투입니다. 다시 말해 시 주석이 국군과 유엔군 장병을 100명 이상 사살했다는 이유로 최고 훈장을 수여한 것입니다.

중국이 최초의 7·1훈장 수여자로 차이윈전을 선택한 것은 고도로 계산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6·25전쟁 70주년도 크게 강조했습니다. 중국은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라 부르는데 말 그대로 미국의 침략에 맞서 중국이 북한을 도왔다는 뜻입니다. 용어 자체가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는 왜곡이죠.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국가주석으로서는 20여년만에 처음으로 6·25전쟁 70주년 기념식에 직접 참석하고 “항미원조 정신은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고 강대한 적들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합니다. 미국과 견주는 ‘G2’로 올랐다고 자부하는 중국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선전하는 것입니다.

北은 '칭송', 美日은 '무시'…한국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자 홍콩 반환 24주년 기념일인 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중국 영사관 앞에서 홍콩 인권 활동가들이 지난달 24일 폐간한 홍콩 반중 매체 빈과일보 신문의 축소판을 든 채 반중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자 홍콩 반환 24주년 기념일인 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중국 영사관 앞에서 홍콩 인권 활동가들이 지난달 24일 폐간한 홍콩 반중 매체 빈과일보 신문의 축소판을 든 채 반중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빠른 경제 성장과 군사력 증강 등을 바탕으로 한 중국인들의 자긍심은 BTS를 향한 공격과 같은 배타적 애국주의로 분출되고 있습니다. 중공 100주년에 맞춰 공개된 중국에 대한 전세계인들의 호감도 조사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세계 주요 17개국 1만8850명을 대상으로 지난 2~5월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응답률이 50% 아래인 나라는 그리스(42%)와 싱가포르(34%) 뿐이었습니다. 부정적 응답률은 일본(88%), 스웨덴(80%), 호주(77%), 한국(77%), 미국(76%) 순으로 높았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2015년도 같은 조사에서는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는 37%였습니다. 6년새 40%포인트가 폭증한 것입니다.

각국 정부도 자국민들의 반중(反中) 정서를 고려했을까요. 중공 100주년에 세계 각국은 차가운 시선을 보냅니다. 미 국무부는 지난 1일 시 주석의 중공 100주년 기념사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눈여겨봤다”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도리어 “중국의 핵 전력은 아마도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고 더 높은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중국이 서부 사막지대에 100여개의 새로운 미사일 격납고를 건설하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에 대한 우려를 표합니다. 일본은 정부 대변인 격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이 직접 나서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서 지역과 국제사회 과제에 임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며 날을 세웁니다.

우리 외교부도 굉장히 조심스런 자세를 취합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오늘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이 당 차원의 행사인 점을 감안해서 우리 정부 차원의 별도 입장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중국이 이번 행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주중 한국대사관의 공사급이 기념식에 참석했다고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시 주석과의 전화 통화에서 중공 100주년을 축하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내용은 당시 청와대가 밝힌 통화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중국 인민일보가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알려졌습니다. 지난 4월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중국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의 당시 왕이 외교장관에게 “한국 측은 중공 100주년을 축하하며 중국과 각 분야에서 협력해 가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이 이번 중공 100주년에 맞춰 정상 차원의 축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올 초 이미 정상 간의 대화에서 이같은 뜻을 전달한 것입니다. 중국은 이번에 19개국의 정상이 축전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북한·베트남·쿠바·라오스 등 상당수 국가가 공산정권이거나 화교 인구가 많은 국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축전을 보내서 “중국공산당에 대한 적대 세력들의 악랄한 비방 중상과 전면적인 압박은 단말마적인 발악에 불과하다”며 미국을 겨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축전을 보낸 각국 정당 대표와 전직 수반에는 한국 여당이 포함됐습니다. 중국은 멕시코 하원의장, 레바논 우파 정당에 이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소개했습니다.

중국과 같은 일당독재 국가에서 당은 사실상 곧 국가입니다. 공산당 100주년이 중국인들에게는 마치 건국 100주년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죠. 문제는 분단 현실과 6·25전쟁이라는 뼈아픈 역사에서 중국 공산당을 떼고 보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전세계는 빠르게 미국과 서구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 등의 권위주의 국가 진영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신(新)냉전이라고까지 칭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한국은 미국과 서구 국가들과는 약간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접근법이 중국에 한·중 관계를 중시한다는 인상을 줘 긍정적인 영향으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 외교의 선택이 혹여나 민주주의 진영에서 부정적인 영향으로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