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억원 기재부 1차관(오른쪽)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억원 기재부 1차관(오른쪽)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1차 추가경정예산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전체 89개 사업의 80%를 넘는 74개 사업이 예산을 절반도 못 쓴 것으로 나타났다. 34개(40%) 사업은 0%대 예산집행률로, 착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여당은 긴급성을 이유로 4·7 재·보궐선거전 추경안을 밀어붙였지만 결국 구체적 계획 없는 ‘선심성 추경’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차 이후 약 3개월 만에 더불어민주당이 최대 35조원 규모의 2차 추경을 본격 논의하면서 예산만 편성해놓고 정작 시급성과 목적성이 없어 쓰지 못하는 행태가 반복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추경 편성 후 사후평가와 성과분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졸속 추경 편성’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34개 사업은 예산 집행률 0%대

1차 사업 83%가 예산 절반도 못 썼는데…또 '35조원 묻지마 추경'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23일 각 부처에서 받은 ‘2021년 1차 추경 실집행률 현황’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1차 추경에 편성된 전체 사업 중 예산을 절반도 쓰지 못한 사업이 74개(83.1%)에 달했다. 사업을 시작조차 못한 집행률 0%대의 사업도 34개나 됐다.

여당은 3월 25일 세밀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야당의 주장에도 14조9391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선거용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민주당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것이지 선거를 의식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 2차 추경 논의가 이뤄지는 시점까지도 다수의 사업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표를 의식한 선심성 추경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의원은 “나랏돈으로 표를 사려고 했던 것이 드러났다”며 “그래놓고 또 2차 추경을 들고나온다”고 비판했다.

긴급성 없는 사업 ‘끼워넣기’ 문제

예산 집행이 부진할 수밖에 없는 건 애초부터 긴급하지 않은 사업을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끼워넣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여당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며 ‘소상공인특별경영안정자금’ 사업에 2000억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두 달이 넘도록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정부는 집행 부진 이유에 대해 “상환조건 등 구체적인 설계를 위해 관련 부처 등과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바꿔말하면 구체적인 설계 없이 예산부터 짠 셈이다. 200억원을 편성했지만 집행률이 0.5%인 ‘소득안정지원자금’이나 313억원을 배정했지만 집행률이 0.2%인 ‘취약계층 돌봄인력 마스크 지원’ 사업 등도 마찬가지다. 38억원이 투입된 ‘아동안전지킴이’ 사업도 집행률이 0%였다.

코로나19 사태 극복과 별 관계가 없었지만 추경안에 들어간 사업도 비슷한 처지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내세우며 코딩 등을 가르치는 ‘K-디지털 트레이닝’ 사업에 474억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훈련생 수요에 비해 훈련과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집행률이 9.9%에 그쳤다. 정부는 이제서야 훈련과정을 추가로 개설하고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사후 효과·성과분석 자료 ‘전무’

지난해부터 올해 3월까지 총 다섯 차례, 81조8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했지만 집행 부진, 사업계획 부실 등이 이어지는 건 추경 편성 후 제대로 된 성과평가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 의원은 정부와 정부 산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작년 네 차례 추경에 대한 효과분석 자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분석 자료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추경의 구체적 효과를 전체 지표와 분리해 별도로 계량화하기 어려운 점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2020년 추경 등 확장적 재정정책이 코로나 위기에 따른 경기 충격 완충 및 취약계층에 대한 버팀목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판단한다”며 근거 없는 답변을 보내왔다. 정부 재정정책을 연구하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역시 “2020년 네 차례 추경의 회차별 경제적 효과와 관련된 본원의 진행 연구는 없다”며 “관련 전망 및 실적 수치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정부 자료가 없어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고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막대한 예산을 편성해놓고서는 ‘국민 세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어떻게 쓰였는지’ 같은 기본적인 사항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지금이라도 경제효과 분석을 당장 시행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