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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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한 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민주당은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초청해 '수술실 CCTV 설치, 왜 필요한가?'란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의료사고 후 입증이 어려운 점을 토로했습니다.

대리수술이나 환자 성추행 등의 문제도 발생하자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여권 대권주자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SNS에 "수술실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아니다"며 "정상적으로 수술을 집도한 의사 입장에서도 CCTV 영상은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78.9%가 수술실 CCTV 설치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술실에 CCTV 설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 배경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도를 바꾸기 전 제도 변화에 따른 다양한 영향과 부작용을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선과 악'의 문제로 단순하게 다뤄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저는 사정이 있어 제왕절개 수술을 했습니다. 출혈이 많았는데도 전문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진 덕에 무사히 수술을 마쳤습니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이 국회에서 논란이 되는 걸 지켜보면서 수술 당시가 떠올랐습니다. 하반신 마취로 진행된 제 수술 장면이 CCTV에 녹화되는 걸 상상하면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민주당 법안은 수술실 CCTV 녹화를 환자 동의로 이뤄지도록 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CCTV 녹화를 반대할 환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만약 당시 수술에서 CCTV 녹화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찬성했을 것입니다. 수치심을 감수한 채 말입니다.

수술 영상은 병원 시스템에 저장될 것입니다. 이 지사는 "CCTV 영상 열람을 엄격한 절차로 관리하면 정보 유출 우려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텔과 같은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업조차 해킹 사고를 겪는 마당입니다. 영상 유출에 따른 피해는 반드시 고려돼야 합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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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CCTV 영상이 유출되지 않도록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형병원이 아닌 수술 역량을 갖춘 인근의 중형 병원은 수술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CCTV 감시가 싫어서가 아니라 보안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줄어들면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하는 환자도 생길 수 있습니다.

자금력이 있는 대형병원의 경우에도 한정된 자원을 의료와 CCTV 보안에 나눠서 투입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피해는 의료진과 환자들 몫입니다. 혹시라도 수술실 CCTV 감시를 꺼려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전공에 인재가 지원하지 않는다면, 이는 국가적으로도 손실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밖에 없는 제도를 이렇게 쉽게 다뤄도 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여론이 주목하는 특정 사건이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오독해 다수의 자유를 제약하는 게 맞는지 말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를 막기 위해 부동산 관련 공무원의 전화를 도청해야 한다거나, 정인이 사태를 막기 위해 모든 입양 가정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무리가 아닙니다. 아동학대 대부분이 가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미취학 자녀를 둔 가정에 CCTV를 의무화한다거나,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 전 직장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실제 수술을 경험한 대부분의 환자는 대한민국 의료진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일부 불법을 저지른 소수의 의료진 때문에 대다수 의료진까지 감시하자는 주장이 합당한지 다시 한번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국회가 대한민국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감시와 처벌 대신 예방에 보다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습니다.

조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