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속 참전용사 선배 유골 보고 봉사 시작…"전역 후에도 이어갈 것"

"초겨울 야산에서 낙엽을 이불 삼아 누워 계셨던 6·25 참전 전사자의 유해를 보고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습니다.

참전용사 선배들께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순간도 그때입니다.

"
2016년부터 국가유공자 대상 봉사활동과 기부를 이어가고 있는 육군 2기갑여단 설악 대대 노대균 상사는 유공자 어르신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는 항상 군복을 입고 깍듯이 경례한다.

선배 군인에게 후배가 잊지 않고 찾아왔음을 보이기 위해서다.

2012년 처음 군단 6·25 전사자 유해 발굴 팀장을 맡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유공자, 혹은 봉사활동은 막연하고 먼 대상이었다.

생존한 참전용사들을 만나는 일도 발굴 작업을 위한 '일'의 일부였다.

[#나눔동행] "참전 유공자의 열악한 현실" 6년째 봉사·기부 노대균 상사
하지만, 일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부채 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살아 계셨다면 여든 살쯤 되셨을 전사자들의 유해를 수습하며 그들의 전우인 생존 유공자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다 야산에서 발견된 한 구의 참전용사 유해를 보고 큰 슬픔을 느낀 노 상사는 경기북부보훈지청과 함께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유공자 대상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막상 봉사를 시작하고 노 상사는 열악한 참전 유공자들의 현실에 한 번 더 놀랐다고 한다.

그는 "정말 잘 사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많은 참전 유공자분들이 낡은 집에서 경제적,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계셨다"며 "개인별로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게 됐다"고 전했다.

[#나눔동행] "참전 유공자의 열악한 현실" 6년째 봉사·기부 노대균 상사
그는 유공자 어르신들 개인 특성에 따라 필요한 일을 고민하고 이에 맞는 봉사 활동을 한다.

주거 환경이 열악한 어르신에게는 청소와 집 보수 봉사를, 외로우신 분께는 결연을 통한 방문 말벗 봉사활동도 한다.

봉사 활동에서 노 상사가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는 '대면'이다.

"자주 찾아뵙는 것만으로도 유공자 어르신들은 아직 자신들을 잊지 않았다는 점에 큰 위안을 느끼신다"고 말했다.

[#나눔동행] "참전 유공자의 열악한 현실" 6년째 봉사·기부 노대균 상사
봉사하며 보람찼던 순간도, 슬펐던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노 상사는 겨울철 연탄과 생활필수품을 전하기 위해 찾은 참전용사가 "벽에 틈이 있어 찬바람이 들어온다"며 도움을 청했을 때 기억을 떠올렸다.

필요한 재료를 구해보려 했지만, 주말이라 힘든 상황. 재료를 구해서 바로 도와드리겠다는 노 상사의 말에 어르신은 "말만 들어도 고맙고 이런 일을 하는 후배가 정말 자랑스럽다"며 두 손을 꼭 잡았다.

이틀 후 재료를 다 구해 방문하고자 연락을 했지만 닿지 않았다.

보훈지청을 통해 확인해 보니 어르신은 급환으로 돌아가신 후였다.

노 상사는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전쟁이 끝난 후 생활 형편이 어려워 결국 한글을 배우지 못한 한 유공자는 노 상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며 보훈지청 복지사에게 대필을 부탁해 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나눔동행] "참전 유공자의 열악한 현실" 6년째 봉사·기부 노대균 상사
편지에는 '나의 집은 38선을 지나 작년에 폭탄이 터졌던 연천 중면을 지척에 두고 있어 몹시 춥답니다.

후배님들이 우리 선배들에게 따뜻한 겨울 되라고 핫팩을 보내주어 아주 잘 쓸 것 같네요'라는 내용이 담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대면 봉사활동이 다소 어렵게 됐지만, 그의 '선배' 돕기는 멈추지 않는다.

[#나눔동행] "참전 유공자의 열악한 현실" 6년째 봉사·기부 노대균 상사
매달 월급을 저축해 모은 돈으로 식료품이나 마스크 등 어르신들이 필요한 물품을 사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이번 달에도 이렇게 모은 사비 500만원을 털어 참전용사들에게 쌀 1천㎏과 라면 52박스를 기부했다.

그는 부대에서 '봉사 전도사'이기도 하다.

늘 봉사해야 하는 이유와 활동에서 오는 행복함을 입에 달고 사는 그의 열정에 많은 동료가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전역 후에도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겠다는 노 상사는 "늘 군인으로서, 나아가 국민으로서 의무에 대해 생각한다"고 한다.

그는 "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개인의 목숨을 담보로 전장에 나서게 했다면 전쟁 종료 후에는 참전용사들을 국가의 이름으로 선양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아직 많은 참전 용사 선배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데 선·후배 전우들이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