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명시적인 야망과 공격적인 행동은 규칙에 입각한 국제 질서와 동맹국들의 안보와 연관된 분야에 구조적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공동 성명에 명시한 문구입니다. “중국이 3대 핵전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핵무기를 확충하고,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중국을 ‘국제 규범에서 벗어나는 국가’, ‘자유진영의 최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옌스 스톨텐베리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은 우리에게 점점 접근하고 있다”며 “사이버 공간, 아프리카 대륙, 우리의 중요한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나토 소속의 한 외교관은 “중국은 더 이상 서방이 그동안 바랐던 상냥한 무역 파트너가 아니다”라며 “중국은 부상하는 강대국이고 나토는 이에 적응해야 한다”고까지 밝혔습니다.

'대서양 동맹' NATO, 태평양까지 영향력 확대


나토는 원래 냉전 시절 구(舊)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1949년 창설된 군사 동맹입니다. 냉전 해체 이후 폴란드, 체코 등 구 공산권 국가들을 대거 영입한 나토는 주로 러시아의 위협에 대항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토가 소련을 사실상 계승한 러시아가 아닌 중국에 한껏 날을 세운 것입니다. 반중(反中) 노선을 명확히 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나토를 구성하는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중국과 밀접한 양자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한국 만큼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큰 국가들도 많죠. 그런데 미국이 나토가 중국을 러시아와 함께 민주주의에 맞선 국가들로 규정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온 ‘민주주의·인권 vs 독재·인권 탄압’의 프레임을 공고히 한 것입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나토 군은 태평양을 향하고 있습니다. 오는 8월 부산항에 기항하는 영국의 6만5000t급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가 대표적입니다. 퀸 엘리자베스 항모엔 미국 해병대 F-35B 스텔스 수직이착륙기 10대도 탑재해 현재 이동 중입니다. 8월에는 한국군과도 연합훈련이 예정돼있습니다. 프랑스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샤를 드골함 전단, 독일의 호위함도 아시아를 향하고 있습니다. 명실상부 나토의 ‘동진(東進)’입니다.

반중 노선에 참여하는 모양새를 최대한 피하고 있는 한국은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8월 영국군과의 연합훈련을 비롯해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군사적 활동에 참가할 것을 요구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나토는 이번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협력 강화 대상 국가로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4개국을 꼽았습니다. 호주와 일본은 쿼드(Quad·4개국 안보협의체)의 일원이고 뉴질랜드는 호주와 함께 첩보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 참여국입니다. 쿼드 전면 참여를 최대한 피해온 한국 입장에선 사면초가인 상황이죠.

'아시아판 나토' 쿼드 대신, 나토 직접 등판


바이든 미 행정부는 미국이 참여하는 모든 국제회의와 다자(多者) 동맹에서 대중 견제를 주요 의제로 삼을 전망입니다. 여러 단계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도입니다.

당초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쿼드를 ‘아시아판 나토’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소 변한 기류가 감지됩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아시아 정책을 총괄해 ‘아시아 차르’라 불리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지난달 19일 “현시점에서 쿼드를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딱잘라 말했습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다음날 브리핑에서 “쿼드 멤버십의 변화에 대해 예측하거나 예상할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달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쿼드 체제에 참여시킬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쿼드) 체제 자체를 넓히려는 논의는 전혀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대신 한동안 동아시아 정세에는 거리를 두던 유럽 국가들은 부쩍 아시아를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했던 영국은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과 그에 따른 시위, 중국 공안의 홍콩 시민 인권 탄압이 계속되자 계속해서 중국에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 2월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 내의 위구르족 ‘재교육’ 시설에서 수감된 여성들에 대한 집단 강간과 고문, 강제 피임 등이 자행돼 왔다는 폭로를 내놓으며 중국과의 외교적인 분쟁까지 야기합니다. 유럽연합(EU)은 미국과 지난 15일 ‘합동 무역 및 기술 위원회’를 함께 신설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중국 기술을 견제하기 위한 기구입니다.
지난 3월 18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 왼쪽부터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이날 양국은 서로를 맹비난하며 회담은 사실상 결렬됐다. /AP연합뉴스
지난 3월 18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 왼쪽부터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이날 양국은 서로를 맹비난하며 회담은 사실상 결렬됐다. /AP연합뉴스
문제는 중국이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한국을 ‘약한고리’로 보고 압력을 넣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은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의 안정”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것에 정면 반발합니다. 이어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은 G7정상회의 직전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잘못된 장단에 따라가지 말라”며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냉전적 사고로 가득 차 집단 대결을 부추기고 지역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아 중국은 강력히 반대한다”고 말합니다. 대놓고 G7 정상회의 초청장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다음날 출국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압박한 것입니다.

미·중 갈등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혈맹’인 초강대국과 ‘제1 교역국’이자 초강대국을 지향하는 국가 사이에서 위태로운 외줄을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외줄이 갈수록 얇아지고 장애물도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한국이 갈수록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식의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