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硏 조사…"낙인찍히고 비밀보장도 어려워"
성 인지력·전문지식 없는 상담관 많아…인력도 부족
"상담사실 다 알려져"…軍 성고충상담제 개선 시급
군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해 마련된 군 성고충 전문상담관 제도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군인권단체와 국방부 등에 따르면 군내 성폭력 고충을 상담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군 성고충 전문상담관은 지난해 기준 48명이 활동 중이다.

신고율을 높이고 독립성을 담보하고자 민간인 신분으로 고용됐지만, 낮은 직무 이해도와 비밀유지 어려움으로 상담 효용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들은 인력 부족과 열악한 처우, 군내 부정적 시선과 배척 등으로도 어려움을 겪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전문적 피해 지원 어렵고 비밀유지도 안 돼
국방부는 고위 지휘관에 의한 군 성폭력 사건을 근절할 대책 중 하나로 2014년 성고충 전문상담관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역 선임 여군이 피해상담 업무를 맡아야 했던 이전보다 독립된 환경에서 한층 전문적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진행한 '군 성고충 전문상담관 제도 발전방안 연구'를 보면 많은 상담관이 상담 경력을 토대로만 선발됐다.

이 때문에 군 조직이나 성폭력 사건에 관한 전문지식없이 일을 시작한 지원자들이 많았다.

상담관들은 "성에 관련된 걸 상담한다지만 구체적으로는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국방부에서 요청하기를 '당신들은 상담만 하면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권위적이거나 젠더 관점이 부족한 상담관을 걸러낼 심층면접이 없어 상담관들조차 "성인지 테스트를 통해 자질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특히 보고서는 전문상담관 면담이 일종의 '낙인'이 되는 군대의 폐쇄적 분위기 탓에 내담자와의 신뢰관계 형성이나 비밀보장이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전문상담관들은 통상적 지휘체계를 따르지 않고 소속 부대 참모장에게 상담 내용을 보고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지휘관이 자신을 건너뛰었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거나, 비밀유지를 할 수 없도록 상담 내용을 묻는 경우도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일부 여군 간부들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상담 사실을 주변에서 모를 수가 없다.

평판을 신경 쓰면 상담 못 한다", "끝까지 갈 각오로 마음 독하게 먹은 사람 아니면 아예 상담 신청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담사실 다 알려져"…軍 성고충상담제 개선 시급
◇ 출장비 써가며 추가 근무…인력 부족·따돌림까지
상담관 인력 부족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군은 성폭력 대응 업무를 맡은 상담관만 3만7천여명에 이르고 24시간 피해상담까지 가능하다.

미 국방부는 2005년 성폭력 대응 관련 정책 총괄기구인 성폭력예방대응국(SAPRO)을 설치해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문 인력을 육성한다.

연간 지원 사례는 6천건이 넘는다.

반면 한국의 성고충 전문상담관은 군단급에 1명 배치돼 있고, 담당 인원과 범위가 한계를 넘어선다.

2019년 한 해 상담관 1명이 상담을 위해 이동한 거리는 1만487㎞·출장 횟수는 159회 수준으로 파악됐다.

비밀 보장을 위해 야간이나 주말에 내담자를 만나는 경우도 잦았다.

하지만 출장비마저 제대로 보전되지 않아 "하반기부터는 모든 출장비를 자비로 부담했다", "문제점을 얘기해도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는 증언이 많았다.

아울러 전문상담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적대감, 냉대 등으로 직무 수행에 불편함을 겪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상담관 하나가 부대 분위기를 흐려놨다", "잘 나가는 대령 인생 망쳤다"는 식의 공격을 받거나 회식에서 "성고충 상담관 있으니 말조심해라는 소리도 듣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고충 전문상담관 제도는 외부 전문가를 고용해 기밀이 강조되는 군 조직 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파격적 제도"라며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피해 지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