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나 방사선사 등 의료기사에게 사실상 독자적인 의료행위를 허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국민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려면 의사의 지도 없이도 의료기사가 업무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의사단체는 “의료기사에게 단독행위를 허용하면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해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기사법 개정안 상정 여부를 곧 열릴 전체회의에서 다룰 예정이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6일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의료기사에 대한 정의 조항을 변경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 의료기사법 제1조의 2는 의료기사를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 진료나 의화학적 검사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남 의원 안은 여기서 ‘지도 아래’라는 문구를 ‘의뢰 또는 처방에 따라’로 바꿨다. 의사가 같은 공간에서 직접적인 지시를 하지 않더라도 의료기사가 진료·검사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남 의원은 “의료기사를 의사의 지도 아래서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는 건 과잉 규제”라며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 환경에 놓인 중증장애인과 노인 등에 대해 서비스를 원활히 제공하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기사와 환자단체 등은 찬성 입장을 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 산간오지 등에서 의료기사에 의한 서비스를 받으려면 멀리 있는 병원까지 이동해야 해 많은 시간과 교통비, 의사 진료비까지 이중삼중의 비용이 들었다”며 “중증장애인과 노인이 접근 가능한 지역사회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개정안에 적극 동의한다”고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안전불감증 법안”이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의협은 “의료기사가 의사의 의뢰 또는 처방만으로 단독 업무를 수행한다면, 중증장애인이 의사의 즉각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며 “이는 전체 보건의료 체계를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에선 이 개정안을 두고 “의료기사가 의사를 벗어나 단독 개원하는 길을 열어주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의료기사의 단독개원을 허용하거나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은 2010년, 2013년, 2019년에도 발의됐지만 의사단체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보건복지위 여당 간사인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찬·반 양측 입장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곧 상임위에서 검토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