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강원도 강릉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강원도 강릉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스1
'제3지대' 합류와 '국민의힘' 입당을 놓고 저울질을 하던 유력 대권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근 야권 인사들을 만나 사실상 입당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섣불리 국민의힘에 입당하기보다는 제3지대에 머물며 자기 세력을 만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아무런 조직이 없는 윤 전 총장이 거대 정당에 단신으로 들어가 대선 경선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총장 시절 정치 중립 위반 지적을 받아왔던 윤 전 총장이 곧바로 국민의힘에 입당해 정치를 시작하면 당장 여권에서 '국민의힘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윤 전 총장 측이 사실상 국민의힘 입당 의사를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국민의힘 입당을 거부하다 단일화 경선에서 패한 사례를 참고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을 압도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3월 당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 '역전패' 당했다.

오세훈 후보가 안철수 대표와의 상당한 격차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1야당의 '조직력'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볼 때 만약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한 후 당내 다자구도에서 경선을 치렀다면 무난하게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안철수 대표가 '제3지대'를 고수하다가 이 같은 결과를 맞았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은 모두 한 자릿수 초라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본격 대선 국면이 시작되고 단일후보가 결정되면 지지율이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전 총장이 제3지대에서 독자세력을 구축한 후 국민의힘 후보와 1:1 단일화 승부에 나설 경우 이번 안철수 대표 사례처럼 역전패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와 안철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3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와 안철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3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자금과 조직의 한계'도 윤 전 총장이 입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준석 당 대표 후보는 앞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재산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100억~200억원 들어가는 대선판에서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재산은 없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제3지대 유력 주자로 주목받았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본격 레이스 3주 만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무소속으로 대선을 준비하면서 인력과 조직, 자금 등 모든 측면에서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기문 전 총장은 직접 "당이 없어 사비를 쓰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캠프에 1억원을 내놓으면서 "당분간 이거 갖고 쓰라"고 했는데, 이를 불과 이틀 만에 소진하자 반기문 전 총장이 당황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러한 어려움이 반기문 전 총장이 불출마를 결심한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는 얘기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전 총장의 측근은 최근 안철수 대표와 과거 함께 일했던 인사를 만나 조언을 구했는데 유사한 이유로 '제3지대 출마'를 만류했다고 한다.

이 인사는 윤석열 전 총장 측에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 정치에 뛰어들면 한 달 내에 정당에 입당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안철수 대표와 일하며 조직과 자금을 갖추지 못한 소수정당 후보가 갖는 한계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제3지대 인물난'도 문제다.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참패하긴 했지만 중도보수 진영을 하나로 묶는 데는 나름의 성과를 냈다. 현재 제3지대에는 인재 풀(pool) 자체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평가다.

21대 국회의원 구성이 그 방증이다. 20대 국회에선 '제3지대'로 볼 수 있는 옛 국민의당 37석, 바른정당 30석 등이 있었지만 이번 국회에선 거대 양당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중도보수 진영 제3지대'라 할 만한 국민의당은 3석에 그쳤다.

결국 윤석열 전 총장이 제3지대에서 성공하려면 국민의힘 인사들이 당을 뛰쳐나와 합류해야 하지만 직전 대선에서 반기문 전 총장의 실패를 지켜본 이들이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다.
임기를 4개월 여 남기고 물러나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임기를 4개월 여 남기고 물러나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특히 최근 국민의힘은 4·7 재보궐 선거 승리를 계기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준석 후보가 "공정한 경선을 위해서는 특정인을 배려해서는 안 된다"며 버스론을 제시한 배경이다.

이준석 후보는 TV토론에서 "버스는 특정인을 기다려서는 안되고 특정인을 위한 노선으로 가서는 안 된다"며 "공정하고 엄격한 룰을 만든다면 당 외부 주자들이 경선에 참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경원 후보가 "윤석열이 당에 안 들어와도 버스는 출발할 건가"라고 질문하자 이준석 후보는 "지난 재보선에서도 안철수 합류 없이 버스를 출발 시켜 승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현재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워낙 미미한 수준이라 당원투표를 포함한 경선을 한다고 해도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 같다"며 "윤 전 총장으로서는 굳이 어려운 길로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장성철 소장은 "윤 전 총장이 최근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공부를 더 하다가 대선 경선이 시작되는 9월쯤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을까 전망된다"고 말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