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규약 개정해 공식 '2인자' 자리…선군정치 삭제하고 병진노선→자력갱생
적화통일 문구 손질…"민족해방 민주주의 과업"→"사회의 자주적 민주적 발전 실현"

북한이 최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바로 다음 가는 직책인 '제1비서' 자리를 신설했다.

북한에서는 그간 사실상 권력서열 2위로 꼽히는 인물이 여럿 등장했었지만, 이처럼 공식적으로 당내 2인자 자리를 만든 것은 이례적이다.

북, 김정은 '대리인' 당 제1비서직 신설…최측근 조용원 가능성(종합)

1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 1월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조선노동당 규약'(이하 당규약)을 개정하고 제3장 '당의 중앙조직' 26조의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부위원장들을 선거(한다)"는 문구를 "제1비서, 비서들을 선거(한다)"로 교체했다.

'정무국' 직제를 '비서국'으로 환원하면서 부위원장을 비서로 명칭 변경하는 동시에 총비서 바로 아래 제1비서 직함을 신설한 것이다.

7명의 당 비서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명실상부한 2인자 자리를 공식화한 셈이다.

또 "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는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다"라고 명시했다.

북한에서 김 총비서를 대리해 회의를 주재할 수 있는 직책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들 뿐이다.

개정 당규약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시급히 제기되는 중대한 문제들을 토의결정하며 당과 국가의 중요 간부들을 임면할 데 대한 문제를 토의한다"는 문구와 "총비서의 위임에 따라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은 정치국 회의를 사회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 총비서를 비롯해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덕훈 내각 총리 등 총 5명이다.

당 제1비서라는 직함을 고려하면 정치국 상무위원 중 김 총비서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조용원 비서가 맡았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실제로 조 비서는 지난달 7일 세포비서대회 2일차 회의를 다른 비서들과 함께 지도하기도 했다.

제1비서라는 직함은 김정은 총비서가 2012∼2016년까지 사용한 직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깊다.

2012년 당시 김정은 총비서는 고인이 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자신은 당 제1비서직을 신설해 맡은 바 있다.

이후 2016년에는 '비서제'를 '위원장제'로 전환했다가 이번 당규약 개정으로 이를 되돌리고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자신도 총비서 자리에 올랐다.

개정 당규약에서는 김정은 총비서를 '최고영도자' 대신 '수반'으로 지칭했다.

북, 김정은 '대리인' 당 제1비서직 신설…최측근 조용원 가능성(종합)

개정된 당규약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이름과 주체·선군과 같은 이들의 핵심 용어가 대거 배제됐다.

김정일 시대의 키워드인 '선군정치'는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라는 단어로 대체됐다.

군이 당의 영도를 받든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

김정일 정권의 정치적 기반인 선군정치 대신 노동당 중심의 국정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김정은의 의지를 반영한 셈이다.

당규약에서 "군은(…) 김정은 동지께서 이끄시는 혁명적 무장력"이라는 구절을 "군은(…) 당의 영도를 앞장에서 받들어나가는 조선노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으로 바꿨다는 점에서 이 같은 기조가 읽힌다.

이어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의 당의 최고군사지도기관"이라며 "총비서는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된다"고 규정했다.

반면 군 내부 정치기관 권한은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당 규약에 있던 "군 총정치국은 인민군당위원회의 집행부서로서 당 중앙위원회 부서와 같은 권능을 가지고 사업한다"는 대목이 삭제됐다.

북, 김정은 '대리인' 당 제1비서직 신설…최측근 조용원 가능성(종합)

북한이 국방력 강화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병진노선 대신 자력갱생을 내세운 것도 눈에 띈다.

당규약 서문에서는 "당은 (…)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틀어쥐고" 대목을 "자력갱생의 기치 밑에 자력갱생을 다그(친다)"는 내용으로 바꿨다.

적화통일 관련 내용도 수정됐다.

서문에서 "조선 노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 해방 민주주의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다)"는 문구는 "전국적인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발전 실현"으로 대체됐다.

또 당원의 의무에서는 "조국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적극 투쟁해야 한다"는 대목이 아예 삭제하는가 하면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 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 군국주의의 재침 책동을 짓부시며"라는 문구를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 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 온갖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고"로 바꿨다.

이는 북한이 적화통일에 대한 의지를 사실상 내려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통일 의지를 접고 두 개의 국가 형태를 지향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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