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제정법 남발에 정부 부처도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처 간 이견이 있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데도 법 제정으로 이익을 보는 소관 부처는 국회의석 다수를 차지한 여당에 기대 제정법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인 비대면중소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비대면벤처육성법)은 사실상 중소벤처기업부의 ‘청부 입법’이다. 지난해 7월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이 “비대면·온라인 분야를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제정안을 발의했다.

중기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이 법은 비대면 벤처의 정의를 둘러싸고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일었다. 제정안에서는 비대면 벤처를 ‘정보통신기술, 인공지능(AI) 또는 빅데이터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비대면(非對面)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유통·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등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들 비대면 기업에 규제 특례, 정부 부처 제품 우선 구매, 산업기능요원 우선 배치, 세제 지원 등 각종 혜택을 총망라해 지원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의가 너무 두루뭉술하고 모호해 형평성 시비가 있을 수 있다는 게 국민의힘 소속 산자위 의원들의 지적이다.

정부 부처끼리 이견도 상당하다. 비대면중소벤처기업진흥원 설립, 공공기관 의무 구매 등을 규정한 조항은 기획재정부가 반대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비대면 벤처기업에 콘텐츠 기업이 포함될 것이라는 이유로 난색을 보였다.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온라인플랫폼법) 제정안을 두고선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서로 자기네 소관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플랫폼법은 네이버, 쿠팡 등 온라인 전자상거래 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으로, 아직까지 어느 부처가 담당할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전기통신사업법과의 중복 규제 논란도 있었지만, 정부 부처 간 ‘밥그릇’ 확보에 열을 올렸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방통위는 사실상 전혜숙 민주당 의원을 통해 청부 입법을 시도했다.

국회 관계자는 “법이 새로 생긴다는 건 권한과 예산, 자리까지 해당 법을 담당하는 부처의 몸집이 커지는 걸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제정법 대부분에 기업과 시장에 대한 규제가 포함된 것도 문제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비대면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추진되는 비대면벤처육성법조차 공공기관 의무 구매 등 규제 조항이 4개 들어있다. 최근 본회의를 통과한 제정법인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은 산업 육성법인데도 전체 49개 조항 중 규제조항이 20개로 집계됐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