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현관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 3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현관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뉴스1

북한이 돌연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별의 순간’이 아닌 ‘별찌(별똥별)의 순간’을 잡은 것이라며 비판했다. 북한이 정식 대선 후보도 아닌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에 대해 콩트 형식까지 동원해 비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북한이 보수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를 비판하며 한국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17일 ‘별의 집에서 일어난 별찌소동'이라는 제목의 8분 8초 분량의 방송극(콩트)을 싣고 윤 전 총장을 비판했다. 이 콩트는 윤 전 총장이 자택에서 부인 김건희씨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 콩트는 “요즘 남조선에서 전 검찰총장 윤석열이 ‘별의 순간'을 잡은 인물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합니다”라며 “그런데 정작 윤석열 본인은 무슨 고민거리가 있는지 두달 넘게 잠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그의 집으로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떻습니까”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어 김씨가 “사람들이 봉건시대 왕을 칭송하듯 ‘윤비어천가'를 불어댄다고 보수언론들을 막 비난하던데요?”라고 하자 윤 전 총장이 “그래도 난 그 노래가 듣기 좋구만. 마치 내가 왕이라도 된 것 같은게”라고 말한다. 이어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의 허세는 알만한데 그 흉측한 종인령감(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속통은 통 모르겠거든”이라며 “나야 어쨌든 천행으로 ‘별의 순간'을 붙잡았는데 이걸 놓칠 수 없지 않나”라고 말하는 장면도 담겼다.

콩트는 앞서 김 전 비대위원장이 윤 전 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을 잘 잡은 것”이라며 대권의 기회가 왔다고 한 발언을 겨냥했다. 지난 대선 당시 중도 하차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언급했다. 이 콩트에서 김씨가 “한때 대선주자로 이름을 올렸다가 돌덩이같이 추락해버린 반기문처럼 당신도 반짝했다가 종당(결국)에 사라져버릴지 어떻게 알겠어요”라는 말에 윤 전 총장이 “반짝 했다가 사라진다구? 그럼 내가 별찌란 말이야?”라고 말한다.

여권 일각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윤 전 총장 관련 의혹들까지 거론했다. 이 콩트는 윤 전 총장이 “내 그래서 당신이 련루되여(연루돼)있는 ‘도이치모터스’ 회사의 주가 조작 사건을 열성껏 덮여버렸잖아. 장모님의 사기범죄도 말이야.”라고 말하는 대목까지 담았다.

북한이 그동안 여러 차례 한국의 선거철에 대외 선전매체를 통해 특정 정당과 인물들을 비판해왔다. 앞서 2017년 대선을 앞두고는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자 안 후보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도 타깃이었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통일의 메아리 등 북한의 대남 인터넷 선전 매체는 우리 언론 보도 등을 인용하는 등 여러 형식으로 국내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거나 비난 등을 해온 사례들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식 대선 출마도 하지 않은 인물에 대해 콩트 형식까지 동원해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전 총장이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성하며 유력 후보로 떠오르자 사전 견제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그동안 여러 차례 대선 후보를 겨냥해 비판을 낸 적이 있지만 대부분 이들이 정식 후보가 된 뒤 대북 정책의 윤곽을 잡은 뒤였다”며 “아직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은 인물에 대해 방송극 형태까지 동원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북한 입장에서 현재 남한은 대외 정책의 상수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보수 정당이 집권하면 셈법이 매우 복잡해진다”며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중도층을 잡아야 한다는 걸 잘 아는 북한이 일부러 후보가 되기 전에 여권 결집 등을 노리고 윤 전 총장에 대한 비판에 나섰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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