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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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비대면 중소벤처기업 육성법(비대면벤처법)’ 제정안을 다음달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비대면 벤처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지만 막상 전문가들은 현장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하고 있다. 벤처업계에서 요구하고 있는 차등의결권 도입 등 혁신성장법안 논의는 뒤로 제쳐둔 여당이 내년 대선을 의식해 ‘보여주기식’ 입법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호중 “비대면벤처법 꼭 의결”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29일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야당의 거부로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시급한 민생법안인 비대면벤처법 논의가 지연됐다”며 “5월 임시국회에서 꼭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올라 있는 비대면벤처법(정태호 민주당 의원 발의)은 ‘비대면 중소벤처’를 별도 기업군으로 분류해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비대면벤처의 정의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부터 만드는 게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입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정수 명지대 교수는 최근 공청회에서 “지금 제도로는 정책적 목표 달성이 불가능한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벤처육성법과 창업촉진법, 소상공인보호법 등 관련 법이 있는데 새로운 업종을 규정하는 법을 또 만들면 현장의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중견기업·대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도 제기된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비대면 기업 중 일부인 벤처기업만을 위한 법부터 치고 나가는 건 순서가 꼬였다”며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입장은 어떻게 반영할 건가”라고 꼬집었다. 현실에선 대면과 비대면 영업이 혼재돼 있는 경우가 많아 시행 시 혼선이 예상된다는 우려도 있다.

“또 대기업-중소기업 갈라치나”

민주당이 이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다음달 통과를 목표로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는 건 벤처업계를 향한 ‘생색내기’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서 정책에 반영하기보다는 우선 육성법 제정안을 만들어 산업을 지원할 의지가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만 골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은 꼭 전통시장활성화법이나 지역상생법처럼 특정 산업을 법률로 규정하려 하는데 이게 과연 바람직한 방향이냐”고 지적했다.

야당은 민주당이 이번 법안으로 대기업·중견기업과 중소기업 사이를 ‘갈라치기’해 여당 지지세를 모으려는 전략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산자위 관계자는 “비대면 산업 자체를 키우려는 데는 관심이 없고 또 중소벤처만 지원하겠다는 이분법으로 사회 갈등만 키우겠다는 것”이라며 “여당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했다.

차등의결권·서발법은 지지부진

막상 벤처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차등의결권 도입 관련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민주당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차등의결권 관련 법안(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가덕도신공항특별법에 화력을 집중하는 바람에 논의가 보류됐다. 쿠팡이 미국 증시행을 택한 게 국내 차등의결권이 없는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 뒤 벤처업계에서도 강력하게 도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상임위 논의는 진척되지 않고 있다.

10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발법)도 여당이 원론적으로 처리 의사를 밝혔지만 순위는 다른 법안에 비해 뒤로 밀려 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서발법 처리의 전제로 야당이 반대하고 있는 사회적경제기본법 처리를 내걸었다. 윤 원내대표는 “(서발법) 처리에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사회적경제기본법도 같이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분간 비대면벤처법 같은 여당의 ‘생색내기’ 입법만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윤 원내대표가 취임 후 한 번도 혁신성장과 관련해선 언급한 적이 없다”며 “혁신산업 생태계 지원은 보여주기 차원에서 그칠 것 같다”고 했다.

고은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