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영세 사업장과 중소기업 등에서 최저임금 미지급 관련한 고용주와 근로자 간 분쟁이 크게 늘어났다. 한 중소기업 생산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금형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영세 사업장과 중소기업 등에서 최저임금 미지급 관련한 고용주와 근로자 간 분쟁이 크게 늘어났다. 한 중소기업 생산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금형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경제성장률, 물가 등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영세 근로자 및 사업장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을(乙)’ 간 법적 분쟁 증가가 이런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약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부메랑이 되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을 정할 때 정치적 개입을 차단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저임금 분쟁·사법처리 모두 최다

23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연도별·사업 규모별 최저임금 위반 신고·처리 건수’ 자료에 따르면 분쟁 건수와 분쟁을 해결하지 못해 끝내 사법처리된 건수 모두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2859건의 미지급 분쟁 중 사법처리까지 이어진 건은 절반에 가까운 1377건에 달했다. 2016년 896건보다 53.7% 증가한 수치다. 고용주가 최저임금을 끝내 지급하지 못해 법적 처벌을 받은 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1024건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법처리된 건이다.
최저임금 과속이 부른 '乙의 분쟁'…영세업체·근로자 모두 불만
전문가들은 ‘법을 지키면 될 일’이라고 단순하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고용주와 근로자 모두 불만을 품는 현실을 제대로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쟁 급증은 2018년 이후 2년 만에 30% 가까이 급등한 최저임금과 코로나19로 인한 ‘K자형’ 경기침체 등이 취약계층인 영세 사업장과 중소기업에 더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대형 사업장 역시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지만 기존 근로자의 근로시간과 인력 규모를 조정하는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다. 사내복지 등 비급여 혜택을 줄이거나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세 사업장은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다. 생사 위기에 직면한 영세 사업장, 중소기업은 근로시간과 인력 수를 조정하거나 투자비가 들어가는 설비를 자동화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경기 안산시에서 12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한 제조업체 사장 A씨는 “우리 같은 소규모 사업장은 인건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며 “최저임금이 이렇게 급격히 오르면 ‘법을 어기든지, 회사가 망하든지’ 하는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364만8000명 중 36.3%인 132만4000명은 법정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있다.

정부·국회, 제도 개선은 뒷전

전문가들은 각종 부작용을 막으려면 최저임금을 지금보다 더 체계적인 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경제성장률, 물가 상승률, 실업률 등 객관적인 경제 수치를 반강제적으로 반영하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정치권과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개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최저임금위원회와 공익위원이 있지만 사실상 정부 입김에 따라 최저임금이 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에도 최저임금제 개선 방안이 포함된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하지만 상임위에 계류된 채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추경호·권성동·최승재·정희용 국민의힘 의원 등은 최저임금을 사업 규모별, 업종별, 지역별로 구분해 정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평균 임금 상승률,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하자는 법안(윤희숙 의원 안)도 발의된 상태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근로자의 일자리 감소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한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법안(권명호 의원 안)도 있다. 윤창현 의원은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위해 국회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