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반중(反中) 전선’의 성격을 띠는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안보협의체)와 코로나19 백신 협력 관련 대화를 지속해왔다고 밝혔다. 이 말은 한국과의 ‘백신 스와프’ 진행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미국이 백신 협력 대상 우선순위에서 한국이 뒷전에 있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미국이 백신 공급을 무기 삼아 한국에 쿼드 참여 압박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1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한국과의 백신 협력을 묻는 질문에 “한국과의 어떤 ‘비공개 외교적 대화’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는 가장 우선적으로 국내 백신 접종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공중 보건 분야에서 리더십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캐나다·멕시코를 비롯해 쿼드와 수급 관련 협의를 지속해왔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특정 국가를 우선적으로 선별해 여유분의 백신을 지원할 의사를 내비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일부 백신을 어떻게 할지 찾고 있다”며 “캐나다 총리와도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이미 조금 도왔지만 더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미 지난 3월 멕시코·캐나다와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는 백신 스와프와 비슷한 방식의 백신 제공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쿼드 참여국 간 백신 협의가 진행된 사실도 공개했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같은 날 SNS를 통해 “미국은 전날(20일) 2022년 말까지 전 세계에서 최소 10억 회분의 코로나 백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다음 계획을 세우기 위해 쿼드의 백신 전문가 그룹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회의는 인도·태평양 지역과 세계에서 (백신) 생산과 접종을 촉진하기 위한 다자주의적 협력에 초점을 맞췄다”며 “호주, 인도, 일본의 정상과 전문가들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백신 협력 대상으로 안보협력체인 쿼드를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미국이 코로나19 백신도 안보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미·중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對中) 견제를 위해 강조해온 쿼드, 글로벌 5G(5세대)·반도체 공급망, 신장위구르·홍콩 인권 문제 등에 동참하지 않았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21일 “바이든 대통령이 큰 관심을 갖는 글로벌 서플라이체인(공급망)에서 미국을 도와줄 수 있는 분야가 많아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참여 방안 제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가 백신 지원을 무기 삼아 한국에 대중 견제에 적극 참여하라는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멕시코와 캐나다 등 주변국부터 지원하기로 우선순위를 정했다”며 “백신 지원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데 대중 견제 노선에 하나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한국에도 지원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