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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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처지가 '자중지란'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내 다른 목소리에 대한 친문(친문재인)집단의 '린치'에 가까워 보입니다. 보궐선거 이후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할때마다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초선 등을 중심으로한 당 쇄신 요구는 '공염불'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소위 '대X문'이라고 불리는 강성 친문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대X문'이라는 말이 지금이야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문재인 정부 취임초만 해도 '우리 이니 하고싶은거 다해'라는 말과 함께 현 정부의 든든한 정치 기반을 상징했습니다. 문 정부와 민주당이 말그대로 '하고 싶은대로 다 할수' 있게 만든 공신세력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몇년 사이 당의 강성 세력인 이들은 개혁을 발목 잡는 집단이 돼버렸습니다. 팬덤 세력의 대표적 특징은 '마치 아이돌 가수처럼 되버린 특정 정치인과 정치세력의 입장이 곧 정의'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중도가 대부분 돌아선 '조국사태' '부동산 실정' 등은 여전히 그들에게 '옳은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개혁적이라도 다른 목소리는 그 자체로 '틀린 것'이 됩니다.

정치인들이 지금 상황을 자초했다는 말도 나옵니다. 좌극단에 치우친 강성 세력의 결성을 조장하고 이용한 '팬덤정치'의 비용을 스스로 치르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친문 정치인조차도 개혁의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처음에야 의도적으로 강성팬덤을 이용하려던 정치인들도 시간이 지나면 여기에 휩쓸리게 된다"며 "나중에 가서는 정치인들도 컨트롤이 안되고 그들의 말에 따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말그대로 호랑이 등에서 내려올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당을 쇄신해야 한다며 친문세력·지지자들과 다른 목소리를 낸 초선 5인은 단숨에 '초선 5적'이 돼버렸습니다. 호랑이 등에서 내리자마자 물린셈입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팬덤정치의 결과는 언제나...

팬덤정치는 이 정부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직전 정부였던 박근혜 정권의 '친박 세력'은 팬덤정치의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태극기'로 대표되는 콘크리트 지지층은 한때는 박근혜 정부의 든든한 우군이 됐지만, 개혁을 외쳤던 세력을 몰아냈고 이른바 '옥쇄파동'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결과는 모든 국민이 알다시피 '대통령 탄핵'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치르게 됐습니다.

'친박'은 한번 만들어진 팬덤정치가 얼마나 공고한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탄핵 이후에도 친박세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까지도 이어졌습니다. 박근혜 정부시절 '친박의 핵심'이었던 황교안 전 대표는 이를 기반으로 당 대표가 됐고, 이후에도 여전히 당의 중심에 자리잡은 이들과 함께 역사상 가장 큰 '대패'를 당했습니다.
"팬덤정치로 흥한자 팬덤정치로 망한다" [성상훈의 정치학개론]
당시 황교안 전 대표가 전광훈 목사와 함께 연단에 올라 두손을 맞잡고 연설했던 모습은 여전히 강성세력이 당의 중심에 있다는 걸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합리적 중도'와 멀어진 극단적 팬덤정치의 시작과 결말은 언제나 '해피 오프닝과 새드앤딩'이었습니다. 정치학자들은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로 상당한 비용을 치를 수 밖에 없다"고 예측합니다.

언제나 먹혀들었던 '중도' 방향의 혁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의 중도로의 개혁은 역설적으로 역대급 대패로 가능했다는 분석입니다. 총선 대패 직후 모든 보수세력은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를 외쳤습니다.

이후 들어선 김종인 체제는 심지어 '보수라는 말도 쓰지 않겠다'라고 할 정도로 기존의 가치를 뒤엎었고, 양극화 해소·친노동·친환경 등의 정강정책을 내세웠습니다. 광주를 찾아 무릎을 꿇기도 했고, 극단적 발언은 '막말'로 규정하고 엄벌했습니다.

정치학자들은 아무리 정치판이 복잡해지더라도 기본적인 '중위 투표자 전략'은 언제나 먹혀들었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라 관측합니다.

김 위원장의 개혁도 늘 그랬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우클릭' 논란, 국민의힘에서는 '좌클릭' 논란을 겪었지만 결과는 대부분 '선거 승리'였습니다. 2012년 대선, 새누리당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외쳤고, 2016년 민주당에서는 이해찬, 정청래 등 강성 친노 세력을 대표하던 의원을 공천탈락 시켰습니다. 2021년 재보궐 선거 가운데에서도 김 위원장은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선거 승리는 언제나 시끄러운 양극단 보다는 조용한 중도층에 의해 결정됐습니다.

예방주사 맞은 민주당...내부 개혁 가능할까

민주당 역시 강성 친문을 벗어나 다시 중도로의 개혁이 가능할까요. 이미 너무 멀리와버린 민주당에게 남은 과제는 '대X문 정치'의 비용을 최소화하는길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로만 보면 쉽지 않아보입니다. 전날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과 앞으로 치러질 당대표 경선에서 여전히 친문은 공고한 모습을 보였고, 보일 예정입니다. 친문 지지자들의 의견은 여전히 당의 정중앙에 위치해있습니다.

민주당은 이번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일종의 '예방 주사'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별로 효과는 크지 않아 보입니다.

전날 만난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당에 대한 걱정을 쏟아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도 "싹 갈아 엎지 않는한 뭘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습니다.

그는 "민심을 정확히 캐치하던 의원들도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 둘러쌓여 몇달만 있으면 판단이 한쪽으로 기울게 되는 게 안타깝다"며 "반대편이 치른 '역대급 비용'을 맞닥뜨리기전에 바꿀 수 있는 거라도 바꾸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별다른 합리적인 논리나 설득 과정없이도 강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팬덤정치'는 언제나 손쉽고 달콤합니다. 쉬운 길을 택한 팬덤정치의 부메랑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과연 얼마만큼의 비용을 치러야 할까요.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