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2일 양국 관계 강화 의지를 재확인하는 구두 친서를 주고받았다고 북·중 관영 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중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에 맞서 공동전선을 구축하겠다는 뜻을 대외적으로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 대 북·중’ 대립 구도가 형성될 경우 중국의 협조를 받아 남북한 및 미·북 대화를 재개하려던 우리 정부의 구상도 차질을 빚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동지께서 두 당(黨) 사이의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해야 할 시대적 요구에 따라 중국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 동지에게 구두 친서를 보내 노동당 8차 대회 정형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친서에서 “적대 세력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북·중)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CCTV 등 중국 관영 매체도 이날 김정은이 시 주석에게 북·중 관계를 “세상이 부러워하는 관계”로 발전시키는 것이 북한의 변치 않는 입장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이용남 신임 주중(駐中) 북한 대사를 통해 김정은의 친서를 받은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새로운 형세 아래에서 북한 동지들과 손을 잡고 노력하고 싶다”는 내용의 시 주석 친서를 전달했다. ‘새로운 형세’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출범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수호하며 발전과 번영을 위해 적극적인 공헌을 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어 “두 나라의 사회주의 위업이 새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두 나라 인민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 줄 용의가 있다”며 대북 지원 의사도 내비쳤다.

외교가에선 이번 북·중 정상 간 친서 교환을 계기로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이번 친서 교환이 앞으로 북·중 관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친서 자체만 놓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