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일각서 터져 나오는 불만
"집권 뒤 최대 위기…당이 솔선수범해야"
재·보선 후보 측 "바닥 민심 심상찮다"
"그냥 매 한 번 맞고 지나가자고 해선 안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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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31일 실시된 제 4회 지방선거에서 당시 열린우리당은 역대 집권당 사상 최악의 참패를 했다. 16개 시·도지사 중 열린우리당은 전북 1곳만 챙기는데 그쳤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12곳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한나라당은 서울 구청장 25곳을 석권했고, 열린우리당은 한 곳도 건지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은 서울뿐만 아니라 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전멸했다. 수도권 광역 시·도 의원 지역구 선거구 234곳 중 단 한명도 당선하지 못하고 100% 한나라당에 내줬다. 여당은 광역 지자체 10곳에서 비례대표를 제외한 지역 의원 0명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전무후무한 참패다.

이 참패를 기점으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레임덕으로 급속하게 빨려들어갔다. 열린우리당 내 비주류뿐만 아니라 주류 일각에서도 대통령 탈당을 요구했고, 노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여당은 이듬해 대선에서도 참패하면서 정권을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 넘겨줬다.

여당은 지방선거 참패 원인으로 여권 분열을 꼽았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넘어올 때까지만해도 호남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와 친노무현계는 한 배를 탔다. 그러나 2003년 당 주도권을 놓고 양측이 격렬하게 부딪힌 끝에 여당은 친노 중심의 열린우리당과 호남계 중심의 민주당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참패 원인은 노무현 정부의 무능과 실정에 있었다는 게 당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부동산 값 폭등, 악화하는 청년 실업, 이념적 편가르기 등에 대한 민심이 성난 회초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여당 지도부조차 “민심에 탄핵 당했다”는 결론을 내릴 정도였다.

지방 선거를 약 반년 앞우고 터진 2기 신도시 투기 의혹도 성난 민심에 불을 지른 한 요인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폭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2003년 위례, 김포, 인천, 검단, 화성 동탄, 평택 고덕 등을 2기 신도시로 지정했다. 신도시 후보지 발표 전부터 투기 바람이 일었고, 2005년 말 검찰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2006년 1월 투기 혐의자 1만 5558명을 적발했고, 455명을 구속했다. 공직자 27명도 사전 정보를 입수해 투기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민심은 들끓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면서 여당이 바짝 긴장하는 것은 2기 신도시 때의 악몽 때문이다. 선거 전략가로 통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LH 투기 의혹 파장이 전국으로, 공직 사회로 번지는 양상이어서 4월 재·보선과 내년 대선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2기 신도시 사태 때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LH사태에 대해 특검을 주장한 것도 선거판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경질을 건의한 것도 이런 차원이다. 전 국회의원 300명 투기 의혹 전수조사 카드를 꺼낸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떤 것도 LH 사태 파장을 가라앉힐 효과적 대응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연일 ‘엄벌’‘일벌백계’를 외치고 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어떤 제안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면서도 여당부터 솔선수범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의 경우, 구성 등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검찰이 참여하는 수사부터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혹이 제기되는 정치인들이 대부분 여당 소속인 만큼 국민의힘이 ‘갑’이고 민주당은 ‘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갑갑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으로선 철저 조사와 수사를 외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은 “지역구를 가보면 민심이 심상치 않다”며 “2006년 2기 신도시 때 투기 의혹 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악몽이 떠오른다. 집권 뒤 최대 위기로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아직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대책이 안이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외치기 이전에 자기당 소속 의원부터 먼저 조사를 시작하는 등 치고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영선 후보 측 관계자는 “밑바닥 민심이 악화돼 있다. 선거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며 “오죽했으면 박 후보가 특검 얘기를 꺼냈겠는가. 우리 당부터 전수조사에 들어가는 등 행동이 필요한데도 당이 너무 소극적이고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당 일각에서는 진작부터 검찰도 수사에 대대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진영 민주당 상근 부대변인도 YTN에 출연해 “박영선 후보 지지도가 제법 떨어졌다. 정권 전체의 명운을 걸고 해결해야 될 문제”라며 “2기 신도시 때 엄청난 투기로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에서 진 상황들이 있기 때문에 그냥 매 한 번 맞고 지나가자, 장관 빨리 자른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노태우 정부가 1989년 추진한 분당, 일산, 평촌 등 1기 신도시 지정 때도 투기 바람이 일고, 사전 정보 유출과 아파트 부정 당첨 등 비리 의혹이 터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검찰이 주도하는 합동수사본부가 구성돼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끝에 공무원 131명을 포함 987명을 구속했다. 다만 이 사건 이후 치러진 199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여당이 승리했다. 사건이 터진지 2년이 지난데다 노태우 정부가 대대적으로 실시한 ‘범죄와의 전쟁’과 ‘3당 합당’등 이슈로 투기 문제가 희석됐기 때문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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