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고검 들어서는 윤석열 >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대구고등검찰청에 도착해 장영수 대구고검장, 조재연 대구지검장 등의 영접을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 대구고검 들어서는 윤석열 >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대구고등검찰청에 도착해 장영수 대구고검장, 조재연 대구지검장 등의 영접을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치권 이슈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여권이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립 법안에 대해 ‘법치의 말살’ ‘부패완판’ 등 원색적인 말로 반발하고 나서면서다. 정가는 “윤 총장이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의도”라며 술렁거리고 있다. 4·7 재·보궐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검찰개혁’이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與 지도부는 확전 자제

윤 총장은 3일 대구고등검찰청·대구지방검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취재진과 만나 중수청 입법 시도를 재차 맹비난했다. 그는 “경제 사회 제반 분야에서 부정부패에 강력히 대응하는 것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의무”라며 “부정부패 대응이라고 하는 것은 재판의 준비 과정인 수사와 법정 재판 활동이 유기적으로 일체가 돼야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총장은 이어 “소위 검수완박이라고 하는 것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서, 헌법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라며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중수청 입법 시도는)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정신의 파괴”, “힘 있는 세력들에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와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윤 총장에게 사실상 경고를 보냈지만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갔다는 평가다.

여야는 윤 총장의 이런 발언을 놓고 하루종일 공방을 벌였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는 강경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낙연 대표는 “당의 검찰개혁 특위가 법무부 등 여러 분야 의견을 들어 완성도 높은 법안을 준비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회의에선 검찰개혁을 차분하게 해야 한다는 기조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런 발언들은 지난해 10월 윤 총장의 국정감사 발언 직후 당 지도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집중 공격한 것과 비교된다.

확전을 자제하는 지도부와 달리 당 안팎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정 총리는 “정치인이지 그냥 평범한 행정가나 공직자의 발언 같지 않다”며 “정말 소신을 밝히려면 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처신하라”고 지적했다.

다소 복잡한 여권의 이런 분위기는 재·보궐선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가덕도신공항특별법, 대규모 4차 재난지원금 등으로 달아오르던 선거 분위기에 나온 윤 총장의 돌출 발언이 탐탁지 않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확전을 삼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최 대변인은 이날 ‘수사청 설립 법안 발의가 오는 4월 선거 이후로 미뤄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조율 기간이 길다 보면 선거 뒤에 (발의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초 법무부와 이견을 조율한 법안을 이번주 발의할 계획이었다.

‘단일화 흥행’ 우려하는 野

야당의 셈법도 복잡하다. 불이 붙기 시작한 야권 단일화에 대한 관심이 검찰개혁 이슈로 옮겨붙고 있어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윤 총장 발언에 대해 “(검찰총장이) 작심하고 말하지 않으면 오히려 직무 유기”라며 “전혀 정치적 행보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더 우호적으로 반응했다. 김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 총장의 사퇴 가능성에 대해 “그런 느낌도 든다”며 “3월이 (윤 총장의) 결정적 순간이 되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야권은 특히 “윤 총장의 발언 타이밍과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며 향후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검사 출신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겠다는 그 의도가 관철이 안 된다면 이제는 나도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 표현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고 했다. 윤 총장은 이날 ‘정계 진출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비슷한 답변으로 곤욕을 치른 경험에도 정계 입문 가능성을 재차 열어놓은 것이다.

발언의 타이밍도 절묘하다. 재·보궐선거는 약 한 달, 내년 대선을 약 1년 앞둔 시점이다. 윤 총장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지난 1월까지만 해도 30% 안팎을 넘나들며 여야 후보를 통틀어 선두권을 달렸지만 지난달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윤 총장의 발언은 정치권 공세에 답변하는 수세적 입장이었다면 이번엔 능동적으로 자신의 판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평했다.

정치권은 중수청을 둘러싼 검찰과 여당의 갈등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윤 총장의 작심 발언에도 민주당이 법안을 강행 처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윤 총장이 정치를 안 한다고 봤는데, 여당이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겠다는 상황이어서 이제는 윤 총장이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좌동욱/대구=이인혁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