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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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들어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권력 핵심부가 유난히 잦은 마찰을 빚었다. 다른 정권에서도 청와대와 여당 등 여권 핵심부와 경제팀 간 이견이 있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렇게 사사건건 노골적으로 충돌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만든 것 자체가 경제 정책 팀장 역할을 맡아 경제 운용을 책임지라는 취지다. 하지만 이 정부들어 청와대와 당이 경제 정책을 주도하면서 경제부총리는 무장해제되다시피했다. 이 때문에 ‘김동연 패싱’ ‘홍남기 패싱’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2018년 최저임금 속도 조절 필요성을 제기했다가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등과 충돌했다. 양측 간 갈등이 이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 컨트롤 타워는 경제부총리”라고 못을 박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김 전 부총리가 자기 목소리를 내자 청와대와 여당에서 견제가 들어왔다. 주도권 싸움 논란이 벌어졌고 결국 김 전 부총리와 장 전 정책실장이 동시에 교체됐다.

김 전 부총리에 이은 홍 부총리도 마찬가지다. 다만 홍 부총리는 ‘소신 발언’을 했다가 당청의 요구에 자신의 뜻을 수시로 접으면서 ‘홍두사미’ ‘홍백기’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사표를 던지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철회했다.

홍 전 부총리가 ‘백기’를 든 사례는 많다. 증권거래세 폐지 및 인하,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1차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원,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 2차 재난지원금 지급, 한국형 재정준칙 제정, 주식 양도차익 과세 대상인 대주주 요건 조정, 손실보상금 지급 문제 등을 두고 여권과 각을 세웠지만, 매번 스스로 후퇴했다.

홍 전 부총리가 8전 8패 뒤 이전과 다른 결기를 보인 것은 지난 2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직후다. 이 대표가 4차 재난지원금 지급방식으로 선별과 보편 지급을 언급하자 홍 부총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직설적으로 반대했다. “재정지출은 다다익선(多多益善)보다 적재적소(適材適所)”라고도 했다. 이 대표는 총리 시절 홍 부총리를 총리 직속인 국무조정실장으로 발탁해 함께 일했다. 홍 부총리를 경제부총리로 적극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부총리는 그런 이 총리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으니 여권에 벌집을 쑤여놓은 꼴이 됐다.

이 대표는 지난달 14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홍 부총리가 4차 재난지원금 규모를 두고 “12조 원 이상은 어렵다”고 하자 강한 기조로 “지금 소상공인들이 저렇게 힘든데 재정 걱정을 하고 있다.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비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홍 부총리를 몰아세운 사람은 이 대표뿐만 아니다. 이 대표의 ‘선별+보편 지급’에 대해 홍 부총리가 반대하자 여권에선 그의 사퇴 주장까지 나왔다. 설훈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홍 부총리를 향해 “정말 한가한 소리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서민의 피눈물을 외면하는 곳간지기는 자격이 없다. 그런 인식이라면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여당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에 대해 정무직 공직자가 기재부 내부용 메시지로 공개 반박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잘못된 행태로 즉각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하게 제기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보상 보편지급까지 한다면 엄청난 재정부담이 뒤따를 것이 뻔한 상황에서 재정 수장으로서 제동을 거는 것은 본연의 역할을 한 것이란 지적이 적지 않았다. ‘재정 안정화’는 재정 책임자로서 법적 의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홍 부총리 사퇴 카드까지 꺼내면서 몰아세우는 것은 공직자는 선출된 권력의 하수인 노릇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탈원전 정책 수립 과정을 감사하겠다는 최재형 감사원장을 향해 “집을 지키라고 했더니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든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 했더니 주인 행세 한다”고 한 것과 같은 인식이다.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도 절차적 타당성과 위법성 문제를 제기한 부처 의견은 묵살됐다. 여당 원내대표가 욕설을 섞으며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반대한) 국토부 2차관 빨리 들어오라고 해”라고 한 것도 공직자는 선출된 권력에 복종하라는 인식을 드러낸 한 단면이다.

현 정부들어 ‘패싱’얘기는 비단 부총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대통령 패싱’얘기까지 나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 주요 간부 인사안을 발표부터 먼저하고 다음을 대통령 재가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 패싱’이란 말이 나왔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문제를 두고선 여당의 친조국 의원들은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론에도 불구하고 강행 추진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또한 ‘대통령 패싱’이 회자됐다. 그렇다면 이 정부의 국정운영 실권자는 누구라는 말인가.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