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기념사서 관계개선 메시지

'과거사―경제·방역 분리' 제안
미래 5번 강조…사과·반성 無언급

바이든 '韓·美·日 공조' 정책에
韓·日 관계개선 카드 꺼내
< 태극기 흔드는 文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3·1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태극기 흔드는 文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3·1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제102주년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에서 벗어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강조했다. 일본을 ‘매우 중요한 이웃’이라고 평가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함께 준비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에 맞춰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 제스처를 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강제 징용과 위안부 판결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 한 양국 관계 개선을 기대하긴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우리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때때로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고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지난해 기념사와 비교해 한층 유화적 메시지다.

위안부, 징용 등 과거사 문제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해결하겠지만 그로 인해 경제, 방역 등의 협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는 분석이다. 미래지향적인 관계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전체 연설문에서 일본은 7번, 미래는 5번 언급됐다. 사과와 반성이란 단어는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의 협력과 미래 발전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의 중요성도 거듭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 됐다”며 “지난 수십 년간 한·일 양국은 일종의 분업구조를 토대로 함께 경쟁력을 높여왔고, 한국의 성장은 일본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성장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메시지는 새로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한·일 관계 개선이란 카드를 적극 활용하려는 의지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도쿄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치르는 것이나 동북아 방역 공동체를 주장하는 것 모두 북한과의 대화가 기저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에 화답하지 않을 수 없고, 북한과의 관계에도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며 “한반도 프로세스를 앞당기겠다는 큰 그림 속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추구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유화적인 자세를 취함에 따라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하진 않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만 단시일 내에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문 대통령 발언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일본도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일본은 당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실패, 도쿄 올림픽 취소 우려 등으로 한·일 관계에 관심을 쏟을 만한 상황이 못되고 동인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년 임기 내내 과거사를 앞세우며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가 꼬일 대로 꼬인 상황에서 이날 기념사가 미국을 의식한 ‘립서비스’로 비쳐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문 대통령의 기념사를 속보로 전하며 “역사 문제와 분리해 일본과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강조했지만, 일본 정부를 향한 구체적인 요구나 새로운 제안은 없었다”고 전했다.

강영연/고은이 기자 yykang@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