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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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의식구조가 투영된 '거울'과 같다. 자신도 모르게 특정한 단어나 표현, 용법을 자주 사용한다면 그 거울은 더욱 또렷해질 것이다. 개인 뿐 아니라 동질성이 강한 사회집단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이 특히 그렇다. 같은 정당은 물론, 같은 계파끼리는 자기 리더를 따라 말하는 버릇이 생긴다. '또 그 소리냐' '무슨 뜻인지 알고나 얘기하나'란 핀잔이 쏟아질 수 있음에도 의식을 많이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충성심 경쟁 때문 아닐까 싶다.

이런 얘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이전엔 잘 들어보지 못한, '그들만의 언어'가 유독 많다는 생각에서다. 다양한 견해와 이견을 잘 용납하지 않는, 정치이념적 중앙집권성이 강한 정당이라 그렇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를 능수능란한 '정치 프레임화' 목적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좋고, 이전 정권이나 다른 정당과 차별화해 자신들을 멋지게 부각시키려는 레토릭으로 여겨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런 언어 사용 습관에서 나타나는 여권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마음 속 깊은 곳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며칠 전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큰 논란을 빚고 있는 '포장재 사전 검사 및 표시 의무화 입법'(자원재활용법)과 관련해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고 언급했다. 식품 등 중소기업계가 감당해야 할 갑작스런 규제 비용이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이란 우려가 빗발치는데도 유럽 좌파 정당들이 흔히 쓰는 '길'이란 단어를 차용해가며 지금 당장 실현해야 할 대단한 국정목표인 것처럼 묘사했다. 포장 폐기물을 줄이고 자원재활용에 더욱 힘쓰자는 정도인데, 엄청나게 화려한 정치적 수사로 몇 겹을 포장해놓은 것이다.

지난 9일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이 표현을 썼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했다. 작년 10월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한 국제심포지엄에서 남북 철도 연결과 북한 개별관광에 대해 역시나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거슬러 올라가 2018년 12월엔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였던 홍영표 의원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원전을 단계적으로 줄여가는 에너지전환정책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정부 사람들은 이 표현을 왜 그렇게 즐겨 쓸까? 답은 간단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주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본인의 의지를 확실히 내보이고 최고로 강조하려 할 때 이 표현을 많이 썼다. 2019년 신년기자회견에선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둔 듯 "경제정책 변화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한·일 반도체 부품 교역 갈등 때는 "부품·소재 국산화 어려워도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 했고,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하며 관철 의지를 밝혔다.

정부·여당 인사들이 입에 붙은 듯 쓰는 또다른 표현은 "미룰 일 아니다"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최근 대표 발의한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숙원 과제인만큼 미룰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초슈퍼여당의 의석을 앞세워 20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각종 입법안을 지난해 하반기 무더기 통과시키면서 민주당 지도부가 또한 내세운 명분이 "미룰 일 아니다" 였다.

백번 양보해 소득 3만달러가 넘는 나라에서 '포용'과 '상생'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거꾸로 노동계로 기울어지고 있는 노사간 역관계, 코로나 경제 위기 극복의 다급함, 그 속에서 새우등처럼 더 큰 타격을 받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더해가는데도 이념적 지향성은 양보할 수 없고, 미뤄서도 안되는 일인가 보다. 솔직히 말하면 초슈퍼여당의 힘이 남아있을 때 장기집권 플랜의 달성을 위해 표 기반을 다져야 하고, 그래서 '미룰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것 아닐까 싶다.

'불가역적'이란 표현도 있다. 미국의 북한 비핵화 외교정책을 강조할 때 쓰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가 유행하니 거기서 '불가역적'(irreversible)이란 단어를 쏙 빼서 쓰는 것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이임사에서 자신의 공적 중 하나로 '검찰개혁을 불가역적인 상황으로 추진했다'는 점을 들었다. 최근엔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2월 임시국회에서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며 "민주당은 가덕도를 불가역적인 국책사업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본인들은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선 안된다는 뜻을 담아 '불가역적'이라 했겠지만, 비판적 입장에선 '대못'을 박겠다는 의지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요즘은 조금 뜸해졌지만, '엄중'(嚴重)이란 단어도 대통령부터 실무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매일 뉴스에서 빠지지 않았다. 예사로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다는 뜻인데,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너무 자주 쓰다보니 세상에 엄중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됐다. 입장문에서 이 표현을 빼놓으면 나중에 배임 혐의로 고소나 고발당할 듯이 베껴서 쓰곤 했다.

뭘 그리 대단치도 않은 걸로 정부·여당 흠집을 내려 하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난'하려는 의도가 결코 아니다. 보기에 따라 신기한 집단적 자기도취, 이념적 지향만으로 똘똘 뭉친 모습, 멋진 레토릭으로 과업을 포장해내는 능력, 리더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한결같은 모습 등이 자꾸 머리에 떠올라 하는 말이다. 정부·여당 사람들은 실제에 힘쓰고 온 힘을 다해 행한다는 뜻의 무실역행(務實力行)은 머리에 담아두지 않고, 온갖 레토릭 따라하기에만 열심을 내는 듯하다. 갈수록 얄팍해지는 지적 풍토가 아쉽고, 마치 한 사람이 말하듯 하는 여권의 모습에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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