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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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공무원의 아들 이모군(19)이 “아버지와 같은 일이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힘이 돼 달라”고 호소하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동안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한다고 반발해온 유족들이 미국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군의 편지에 답장이나 관련 입장을 표명할 경우 남북한 당국에도 큰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9일 피살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에 따르면 이군은 지난해 12월 작성한 이 편지에서 “분명 가해자는 있는데 누구 한 명 사과하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사람 생명을 바이러스로 취급해 사살하고 기름을 발라 시신을 훼손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의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인권유린”이라고 비판했다. 이 편지는 지난 4일 주한미국대사관 외교행낭을 통해 미국으로 발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군은 “어느 누구도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없고 오히려 이 사건을 조용히 덮으려는 분위기”라며 정부 대응을 비판했다. 이어 “나 스스로 대한민국 국군이 왜 우리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고 북한군이 왜 죽였는지 진실을 밝히고 싶지만 아직 학생이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진상 조사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유족들은 지난달 정부가 피살 사건 당시 충분한 조치를 취했냐 묻는 유엔에 “북한에 공동 조사를 요구했다”며 사건 당시 정부 차원에서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한데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정부는 당시 서한에서 “사건 발생 가장 초기부터 행동을 취했다”고 강조했지만 당시 우리 군은 국제통신망이나 남북한 핫라인 등을 통해 북한에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다. 정부가 당시 남북간 핫라인이 단절됐다고도 밝혔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피해자 실종 나흘 만에 핫라인을 통해 통지문을 보낸 일도 있었다.

사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국제사회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 외무부는 17일(현지시간) 사건에 대해 “오랜 시간 정립된 북한의 국가 정책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북한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공언해온 바이든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북한 정권을 비판하거나 진상 조사를 요구할 경우 남북 정부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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