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2년 만에 발간한 2020 국방백서에 ‘북한은 적’이란 표현이 또 빠졌다. 해당 문구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나온 2018 국방백서에서 처음 삭제돼 논란이 됐다. 남북 화해·협력 기조를 중시하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북한의 무력시위와 핵 도발 위협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 인식이라는 비판이 군 안팎에서 제기된다.

국방부가 2일 펴낸 2020 국방백서에 따르면 우리 군의 적 개념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으로 명시됐다. 2018 국방백서와 마찬가지로 북한군과 북한 정권을 적으로 직접 지칭하지 않고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2017년 1월)에 나온 2016 국방백서에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사이버공격, 테러 위협은 우리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며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라고 표기했다. 이런 적 개념은 북한의 연평도 기습포격 사태 직후 발간된 2010 국방백서부터 등장했다가 현 정부 출범 이후 발간된 2018년 국방백서에서 빠졌다.

2018 국방백서가 발간된 2019년 1월은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됐던 시기다. 어렵게 조성된 남북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고,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나선 북한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국방백서상 적 개념이 수정됐다는 분석이 나왔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지적이다. 미·북 비핵화 협상이 아무 성과 없이 사실상 결렬됐고, 우리 정부의 대화 요구에 북한은 철저한 외면·무시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작년 6월에는 일방적으로 우리 정부의 재산인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축적된 핵기술이 더욱 고도화돼 핵무기를 경량화, 규격화, 전술무기화했고 초대형 수소탄 개발이 완성됐다”며 우리 정부와 미국을 향해 핵도발 위협을 했다. 남북한 및 미·북 간 정치·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는데도 정부와 군당국이 대북 유화책에 매달리며 북한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020 국방백서를 보면 북한의 군사적 위협 강도는 더 세졌다. 북한은 다양한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는 미사일 여단을 9개에서 13개로 증편하고 남쪽으로 전진배치시키고 있다. 중무장 장갑차 등을 배치한 기계화 보병 사단도 4개에서 6개로 늘렸다. 특수부대인 특수작전군은 청와대 등 남측의 전략시설 모형을 만들어 타격 훈련을 강화하고 장비를 최신형으로 교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