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제네바합의 따라 실제 건설했으나 중단…6자회담 9·19성명에도 명시
'문건 논란'에 주목받는 북한 경수로 건설…비핵화 대가로 추진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의 문건 삭제 논란을 계기로 과거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실제 북한 원전 건설이 추진됐던 사례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31일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만성 전력난에 시달려온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김일성 주석 생전의 필생 사업이었다.

'자력갱생'을 경제발전 기조로 삼아온 북한으로서는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석유를 대체할 원전 건설이 간절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은 1980년대 소련과 원자력 협정을 맺고 실험용 원자로를 들여왔으나 이후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강요받자 1989년 가입 서명을 거부하고 원자로 가동도 중단했다.

이어 그해 말부터 소련의 붕괴가 현실화하면서 소련과의 원전 건설 추진은 아예 수포가 됐다.

그러다가 북한 원전 건설이 비핵화 협상카드로 본격 등장한 건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 때다.

당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경수로가 완공될 때까지는 중유를 제공키로 했다.

이후 경수로 발전소의 핵심인 원자로를 한국 표준형으로 확정 짓는 데 1년 넘는 치열한 협상 과정을 거쳤고, 1995년 12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이 마침내 경수로제공협정에 서명한다.

1997년 8월 함경남도 금호지구(신포)에서 착공식을 시작으로 정지공사와 금호항·여객터미널 공사 등을 차례로 마무리 짓고 2002년 1·2호기의 콘크리트 타설 작업에 착수하는 등 경수로 건설은 순항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국 특사의 방북 당시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계획을 시인했다는 미국 측 발표가 나오면서 제2차 북핵 위기가 촉발, 북한 경수로 건설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은 그렇지 않아도 대북 경수로 제공에 부정적이었던 미국 공화당 정권의 '경수로 건설 철회론'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결국 2002년 11월 KEDO는 제네바합의에 따른 미국의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하고 경수로 사업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한 뒤 이듬해인 2003년 1월 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북한 경수로 사업은 2003년 11월 1년간의 공사중단이 선언됐고, 2004년 11월 공사중단 조치가 재차 1년간 연장됐다가 결국 2006년 6월 공식 종료됐다.

이 같은 우여곡절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북한은 2005년 9·19공동성명 때도 경수로 제공을 끈질기게 요구, 공동성명에 '적당한 시점에서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키로 합의했다'는 문구를 포함시켜 경수로 지원의 길을 터두었다.

북한 원전 건설은 전력난 타개가 시급한 북한의 수요와 맞아떨어지며 비핵화를 견인할 협상카드로 거론돼왔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실제 추진을 위해서는 대북제재 등으로 인해 한미 간 합의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한국형 경수로는 미국이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어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해외지원건설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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