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6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6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각종 포퓰리즘 정책이 대선 후보 간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각각 자영업 손실보상제와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장하며 기획재정부를 질타하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이 먼저 제시한 이익공유제 띄우기에 나서는 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재원마련 대책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단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정치권에서 결정해놓고 공무원과 기업을 윽박지르는 식이어서다. 유력 대선후보간의 포퓰리즘 경쟁이 나라 재정과 기업활동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대선후보 3강의 포퓰리즘 경쟁
2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 총리가 지난 20일 한 방송에 출연해 손실 보상제에 반대의견을 보인 기재부에 대해 "개혁 과정엔 항상 반대·저항 세력이 있지만 결국 사필귀정”이라고 공개 질타한 것에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평소 온건하고 통합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정 총리의 이미지에 비해 지나친 반응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정 총리의 ‘손실보상제 법제화’ 움직임을 놓고 차기 대권 주자로서 존재감 부각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선 후보 선호도에서 이 지사와 이 대표에게 뒤쳐지는 모습을 보이자 선명성을 강조하며 3강 구도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보편적인 지원금 지급 정책을 선도한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기본소득을 지급해야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면서 기재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해왔다. 실제로 경기도에서 수시로 전 도민에게 지급하는 보편 지원금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이 대표는 각종 포퓰리즘 정책 중에서도 자신이 먼저 제안한 이익공유제 띄우기를 우선하는 모습이다. 현재 이익공유제는 자발적 기금 조성을 통해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 등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24일 한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정 총리와 이 지사의 기재부에 대한 공세를 비판했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라고 한 홍남기 부총리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기획재정부 곳간지기를 구박한다고 무엇이 되는 게 아니다"며 "독하게 얘기해야만 선명한 것인가"라고 말한 것이다.
나라곳간, 기업금고 어쩌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선 유력후보들의 포퓰리즘 정책 경쟁 속에 나라 재정과 기업활동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각각의 정책이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부담은 고스란히 정부와 기업 등이 질 것으로 예상돼서다. 당장 손실 보상제만해도 적게는 월 1조원에서 많게는 월 24조원까지 예산이 필요하다는 추산이 나온다. 이익공유제도 수조원대의 기금 출연을 기업에 강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애초에 국채 발행을 통해 손실을 보상한다는 아이디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도와줄 수 있는 여력을 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자영업 손실을 일정부분 보상할 수는 있지만 새로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과도한 적자 국채 발행은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도 수년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국채를 더 발행하면 신용등급 강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홍 부총리는 자영업 손실 보상법과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 논의에 관해 "과도한 국가채무는 우리 아이들 세대의 부담"이라며 "가능하다면 재정여력을 조금이라도 축적하는 것도 지금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에 강제 기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공유제 기금 출연 방식도 문제다. 앞서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생긴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은 정부 주도의 관제 기부로 사실상 실패한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업 등의 자발적 참여로 매년 1000억원을 기금으로 적립하려 했지만 목표치에 크게 미달했고, 대부분을 공기업이 내는 등 관제 기부로 채워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 경영계 관계자는 "농어촌 기금처럼 기부하지 않은 기업을 국감에 불러 망신주는 행태가 또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답 정해주고 답안 만들어오라?
정치권이 정책을 미리 결정해놓고 공무원의 정책 소신을 깔아뭉개는 식의 정책 추진 방식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정·청 협의를 통해 정제된 결론이 나오기 보다는 정치권에서 일단 포퓰리즘 정책을 발표한 후 공무원들에겐 실행 방안을 만들어오라는 식이어서다.

'기재부의 반대'로 비춰진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의 발언도 '해외에는 법제화된 곳이 없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말한 것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손실보상 규모 등을 법안에 담아 지원하고 있는 국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 차관이 "사례를 충분히 살펴보겠다"고 말한 상황에서 기재부를 '개혁 저지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굴복을 받아내는 모습은 정치가 정책 전문가들을 무시하고 있는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다.

한 정부부처 전직 고위 관계자는 "정부 내부의 논의 프로세스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내부에서는 치열하게 토론하되 외부에는 하나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정·청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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