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법치의 최고수호자' 여야…'통치' '대권' 법에는 없는 말
"법치 위의 통치?" 그런 건 없다 [여기는 논설실]

일상으로는 종종 쓰이지만 법적으로는 분명하지 않는 말 가운데 통치(統治)라는 게 있다. ‘나라나 지역을 도맡아 지배하거나 다스린다’는 뜻이니, 전근대 군주국가 시대 때부터 전해온 유물 같은 용어다. 일상으로 쓰인다고는 하지만 통상 정제되지 않은 언론 용어이거나 선거철 즈음에 오르내리는 언어다. 종종은 여야가 날을 세우며 싸우는 국회에서 대통령의 정책 결정이나 행보를 두고 그런 말을 쓰기도 한다. 대권(大權)이란 말과 비슷한 것이다. 전형적인 언론 용어로, 선거철이 임박하면 여의도 주변에서나 나오는 패권적 싸구려 정치 언어가 대권 아닌가.

대권이라는 말 만큼이나 통치는 법적으로 근거가 없는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어디에도 통치라는 말이 없다. 그냥 편하게 하는 말이라면 그렇게 여기고 말면 그만이겠지만, 종종 악용 내지는 오용되고 있어 문제다. ‘오염된 말’ 혹은 ‘오도·오용되는 개념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가령 대통령의 정책적 오류나 근거도 없는 초(超)법적 행위를 두고 ‘통치’라며 어물쩍 넘어가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그것이 현대 민주국가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 어떤 신의 방패라도 되는 양 ‘통치 행위’라고 내세운 채 그 뒤에 숨으려는 청와대의 자기 보호나 같은 여권 내의 공세적이고 거친 행보에 통치가 내세워졌다. 가령 이른바 ‘탈원전 수사’와 관련해서 여당 의원 가운데 그런 논리를 내세운 이가 있다. 말하자면 탈원전은 ‘대통령의 통치 행위’이니 법적으로 문제를 삼고 위법 여부를 따지는 수사도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먼저 헌법을 들여다본 대로 통치는 역사책이나 소설책, 신문 지면에서 책임 없이 흘러가는 말일 뿐이니 통치를 국가유지의 기본인 형사법체제에 들이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구성 원리와 작동 원칙에 대해 헌법보다 더한 전범은 없다. 대통령과 관련된 사항, 권한과 책임까지를 자세하게 명시해두고 있는 헌법에 없으면 없는 거다. 또 하나의 오류는 검찰 수사가 탈원전 정책 자체의 범법 행위를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는 않는 게 현실이지만, 탈원전 정책은 하나의 정책으로 펼 수도 있다. 그 자체로 범법이나 범죄적 결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렇게 가는 과정, 정책의 집행에서 오류다. 가령 공문서를 일부러 조작하거나 고의적 은닉·파괴 같은 것이다. 감사원 감사가 그렇듯, 지금 수사는 그런 잘못을 보겠다는 것 아닌가.

통치를 내세우는 ‘정권의 쉴드치기’는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과거에도 그런 일은 있었다. DJ정부 때 이른바 ‘불법 대북 송금’사건, 4대강 감사에 반대논리 같은 것들이다. 더 거슬러 가면 YS정부 때 감사원이 국방 비리를 파헤친 소위 ‘율곡사업 감사’ 때 논란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과거지사, 권위주의 정부 때의 일이다. 그럴 때 나왔던 통치 논리가 ‘윤석열 검찰’의 수사에 맞대응논리로 나오는 것을 보면, 역사는 진보한다기 보다는 마냥 되풀이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거듭 중요한 것은 법치다. 모든 것이 법에 따라 움직이고, 어떤 경우에도 법은 지켜지며, 악법이라도 고쳐지지 전까지는 그에 따라야 한다는 법치주의에 민주주의의 성패도 달렸다. 인권과 자유 등 모든 보편적 기본 가치수호도 여기에 달렸다.

통치 행위를 부정한다고 해서 대통령의 권한과 권능이 조금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여전히 중요한 공무원이다. 공직 가운데서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법치의 최고수호자여야 한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법치 수호에 앞장서고 제1의 법 집행자가 되면 권위는 절로 따라온다. 사회는 선진화되고, 민주 국가가 될 것이다.

법치대로만 가도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다. 실제로 법에 정확하게 명시된 것만으로도 그렇게 된다. 일정한 요건에 따라야 하지만 사면권도 법이 보장하는 대통령 권한이다. 재정 집행권은 물론 행정부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이 있고, 일부 행정부 밖 공무원에 대해서도 임명권이 있다. 국군 통수권도 있지 않나. 물론 통수(統帥)는 지휘권한을 말하는 것이니, 통치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은 제왕이 아니다. 전근대 왕조국가의 군주가 아니다. 대통령은 현대 민구국가 공화국에서 월급 받고, 재임 중에 문제가 없으면 나중에 연금도 받는 공무원일 뿐이다. 탄핵 당하지 않으면 임기를 보장 받는 선출직의 정무직 공무원이다. 대통령은 국회의원은 물론 한국에서 제일 작은 지방자치단체인 울릉군수나 울릉군의회 의원과도 직위의 높고 낮음이나 우열의 관계에 있지 않다. 이런 것도 중요하다. 대통령은 인구 9000여명의 울릉군수와 ‘협의’는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지시’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총리와 장관에게는 업무 지시를 할 수 있지만 초짜 판사에게도 어떤 지시를 못 하는 것과 같다.

대통령의 이런 법적 지위를 유권자인 국민이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 행정 독주를 막을 수 있을 뿐더러 비극의 씨앗인 독재를 예방할 수 있다. 그게 대통령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근대국가의 민주 정도는 형사법 체제에 있다. 형사법 체제의 최고 수호자역시 대통령이고, 실무책임 부처는 법무부, 따라서 실무책임자, 정부로 보면 실무팀장이 법무부 장관이다. 정부 내 경제팀장이 부총리를 겸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인 것과 같다.

법무부 발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같은 것이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법 안 지키는 정부, 법치를 수호하지 않는 청와대라면 존재 이유가 없다. 불법을 두고 여권 내에서 ‘필요성’ 운운하며 ‘절차적 흠결’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위험한 논리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이른바 ‘검찰 개혁’은 형사법 체제의 변경이다. 민사 문제가 아닌 각종 형사 범죄에 대한 수사권의 주체, 법원으로 보내는 기소권 관할 등의 문제다. 어디서나 기준은 법치이고 법적 절차에 따르는 게 핵심이다.

남용되는 통치나 대권 같은 말을 보면서 ‘바람직한 현대국가는 어떤 형태인가’라는 고전적 담론을 떠올리게 된다. ‘법치에 입각한 보다 이상적인 민주정부는 어떠한 모습인가’라는 명제를 논구(論究)하는 것은 시민의 책무다. 그렇게 ‘통치자 아무개’가 아니라 ‘법치수호자 아무개’를 찾아내고 지켜야 한다. 3류의 한국 정치가 갈 길이 아직은 멀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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