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9일 밤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란으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9일 밤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란으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란이 억류하고 있는 한국 선박의 석방을 위해 정부 대표단에 이어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0일 이란으로 출국했다. 이란 정부가 최 차관의 방문 목적은 선박 문제가 아닌 국내 은행에 동결된 자국 자금의 반환을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으며 교섭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 차관은 이날 새벽 출국에 앞서 취재진에 “우리 선박과 선원들이 억류된 상황이 연출돼 유감스럽기도 하다”며 “선원들의 신변이 안전하다는 것에 좀 안심이 되지만 상황은 엄중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한국과 이란은 많이 협력했던 역사와 관계, 신뢰가 있다”며 “영사 사안은 영사 사안대로, 한국과 이란 간 주요 사안들은 주요 사안대로 주요 인사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7일에는 고경석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 대표단도 선박 억류 해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란으로 출국했다. 이란 정부는 대표단 출국 전 외무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대표단 방문에 대해 협의된 바 없다”며 선박 억류와 국내 은행에 동결된 자금을 연관시키는 해석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란 정부는 정작 선박 석방을 위해 급히 조직된 대표단이 현지에 도착하자 이들의 방문 목적은 자국의 자금 반환 목적이라고 발표하며 선박 억류 해제와 동결 자금 문제를 연관시킬 속셈을 드러냈다.

이란 정부는 선박 나포 직후 급파된 대표단과 달리 당초 예정돼있던 최 차관의 방문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최 차관의) 방문은 선박 억류 전 이미 합의돼 있던 것으로, 주된 의제는 한국에 동결된 이란의 자금에 접근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 차관은 “이란 정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명확히 현장에서 들어본 뒤 거기에 대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미국과 협의해야 할 것들을 갈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차관은 현지 도착 후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부 차관 등과 고위급 회담에 나선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인해 국내 은행에 동결된 자국의 원유 수출대금 70억달러(약 7조8000억원) 가운데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로 의약품과 의료기기, 코로나19 백신 등을 구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인도적 물품에 한해서는 제재가 면제된다는 점을 이용해 국제 공동 백신 공동개발 및 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에 대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미국 재부무의 승인까지 받았다. 외교부는 이란 정부와 관련 논의를 오래 지속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8일(현지시간) 미국·영국산 코로나19 백신은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하며 협상에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메이니는 “미국과 영국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만약 신뢰할 수 있는 다른 나라가 백신을 생산한다면 정부는 그 나라에서 백신을 수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선박을 나포한 이란 혁명수비대는 하메네이를 따르는 조직이라는 점을 비추어 봤을 때 이란이 국내에 동결된 자국 자금의 활용 방안을 놓고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