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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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오는 4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단한 건 ‘깜짝 행보’였다. 차기 대권 주자로 꼽혀온 안 대표가 대권을 포기하고 선거전에 뛰어들자마자 곧바로 지지율은 후보군 중 1위로 치솟았다. 안 대표의 전격 행보는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40%를 웃도는 지지율에도 당시 박원순 후보에게 자리를 넘겨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대권에 도전했던 2012년엔 선거 직전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야당 단일 후보 자리를 전격적으로 양보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2016년 국민의당 탈당 때도 그랬다.

문제는 늘 안 대표가 ‘파격 행보’ 이후 얼마나 그 파급력을 이어가느냐였다. 선거전 초기 받았던 유권자의 관심이 얼마 안 가 시들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안 대표에겐 서투른 ‘아마추어 정치인’이란 딱지도 붙어다녔다. 그래서 4월 서울시장 선거는 ‘정치인 안철수’를 가를 선거가 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을 경우 야권의 가장 유력한 정치인으로 재부상할 것이지만 또다시 삐끗했다간 재기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권교체’ 배수진 친 안철수

2011년 박원순 전 시장과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한경DB
2011년 박원순 전 시장과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한경DB
“분노했다.” 안 대표는 지난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세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졌다.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법 등을 일방 통과시켰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위원회도 열렸다. 거기다 백신 문제까지 터졌다. 이 정부가 국민들을 속이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정권교체의 디딤돌로 칭했다. 국민의힘 지지자로 대표되는 기존 보수진영 또는 중도진영 단독으론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제1야당 지지층과 중도와 합리적 진보가 모두 합쳐서 선거에서 이긴 뒤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고 했다.

안 대표는 보수진영과 손을 잡겠지만 여전히 자신을 ‘중도’라고 칭하고 오히려 “중도의 길이 더 간절해졌다”고 말했다. 기득권 이미지가 강한 기존 보수진영만으론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이긴 뒤 서울시의 혁신을 통해 나라도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들에게 주겠다”고 강조했다. 그 이후엔 현재 존재감이 아직 미약한 야권 주자들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념 정체성 모호하단 지적도

2012년 12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2012년 12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그가 정권교체의 불쏘시개가 되고 야권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비전을 내놓느냐에 달렸다는 평가다. 2011년 혜성처럼 나타난 그는 양극단의 정치에 질린 유권자의 환호를 받았다.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차별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를 이뤄낼 참신한 인물이란 인식을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념적 지향성이 뭐냐며 의심의 한가운데에도 놓였다. 사실 한국 정치에서 ‘중도’를 표방한 세력이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례를 찾긴 힘들다. 안 대표는 정계 진출 초반에 중도 대표주자로서 존재감을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3지대’의 존재감은 줄어들었다. 그는 이에 대해 “이념에 사로잡힐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데 집중해서 문제 해결을 제대로 하자는 게 내 생각”이라며 “이념적인 이분법을 넘어선 실용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시장경제적 관점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는 평가도 있다. 기업인 출신인 그는 기본적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고 기업인의 처지를 이해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찬성한 이른바 기업규제 3법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서도 “고의적인 과실이 아니라면 사업주에 대한 실형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2012년과 2017년 대선 국면에서 모두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아마추어 정치인 딱지 떼나

안 대표는 정계 입문 이후 많은 시행착오와 반성이 있었다고 했다. 안 대표는 “세간의 잘못된 오해와 왜곡이 있었을 때 대응하고 설명하기보단 묵묵히 제 일을 했는데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더라”고 했다. 정치인에겐 ‘설명 책임’이 있는데 적극적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데 소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갈지자 행보’하는 정치 초년생, 과거 영광에 머무르는 아마추어 정치인 등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는 선거 내내 자신을 왜 선택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갑철수’ ‘MB아바타’로 상징되는 ‘셀프 공격’의 덫에 빠졌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자신의 신념을 묵묵히 밀고나가는 스타일이라 가만히 있었던 게 정치력 측면에선 부족해 보일 수 있다”며 “최근엔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여러 사안에 더 적극적이고 명확하게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성과 만들어내 보여주겠다”

안 대표를 떠받치는 정치 세력이 부족한 건 현실적인 약점이다. 국민의당은 올해 21대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못한 3석 규모 ‘비례 정당’이다. 안 전 대표의 측근들은 거대 정당의 중진 의원들이 주도하는 조직과 잘 섞이지 못했다. 탈당과 창당을 반복해온 안 대표는 신생정당의 한계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인물이다.

안 대표는 자신이 그동안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자신이 정치를 시작할 때 지녔던 목표를 바꾸지는 않았다고 했다. 안 대표는 “한번 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진 않을 것”이라며 “이젠 성과를 만들어내 보여주겠다”고 했다.

고은이/좌동욱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