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의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해 대법원이 “해외 입법례를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국회에 전달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임원)를 상대로 손해배상 등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상법 개정안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원회에 다중대표소송제와 관련, “국내 논의, 해외 입법례 등을 종합해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는 견해를 전달했다. 선진국 중에서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한 나라는 일본 정도가 있으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주주 요건과 소송 대상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대법과 달리 법무부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취지에 공감한다”는 관계기관 의견을 제출했다.

상법 개정안에는 상장사의 경우 지분 0.01%(비상장사 1%) 이상 보유 주주가 자회사 이사에게 소송을 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이 포함됐다. 이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한 일본과 비교해도 과도하다는 게 경제계 주장이다. 일본에서는 모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주식 장부가액이 모회사 자산총액 20%를 초과하는 ‘완전 자회사’일 경우에만 소송 대상이 된다. 상장사는 지분 1%를 보유해야 해 상법 개정안(0.01%)과 비교하면 조건이 까다롭다.

대법원은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최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에 대해서도 “주주권 본질에 반한다”며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美·獨, 다중대표소송제 없어…日, 100% 완전 자회사만 대상

법원행정처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국내 논의와 해외 입법례를 종합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한 것은 정부의 상법 개정안상 다중대표소송제가 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란 분석이다.

상법 개정안과 일본의 규정을 97개 계열사(6월 기준)를 두고 있는 카카오 사례에 적용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상법 개정안 도입 시 카카오 주주는 0.01% 지분(약 3억2000만원)만 있으면 54개 계열사에 소송을 걸 수 있다. 하지만 일본 기준을 대입하면 카카오 주주는 1% 지분(약 323억원)을 보유해도 계열사 단 한 곳에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독일은 다중대표소송제가 없다. 영국은 반드시 법원에 허가를 받아야 소송이 가능하다. 미국 역시 다중대표소송에 관한 규정이 없고, 법원이 일정 요건에 따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경제계는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소송 리스크가 커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코스닥협회에 따르면 시가총액 3000억원 미만인 기업이 84%인 코스닥 상장사들은 200여만원 상당의 주식만 보유해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행정처는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하고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하는 ‘3% 룰’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의 분리 선임을 강제하면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3%까지로 제한하는 것”이라며 “주주권의 본질에 반해 ‘주식 평등의 원칙’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과도하게 인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미현/좌동욱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