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재벌개혁 의지 재확인…"거듭날 타이밍"
野 '삼성 신경영' 재조명…"우리 당도 싹 바뀌어야"
'이건희 평가' 코드 따라?…與 "공정3법" 野 "우리도 혁신"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평가하는 여야 정치권의 엇갈린 시각에는 진영별 속내가 고스란히 반영된 모습이다.

이른바 '공정경제3법' 입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이 회장의 공적뿐만 아니라 과오까지 부각하면서 재벌개혁의 당위론을 뒷받침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 들어 당쇄신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국민의힘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압축된 이 회장의 1993년 신경영 선언(일명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주목했다.

'재계서열 1위' 삼성그룹 수장의 공과를 단순히 평가하는 차원을 넘어 정당별 주안점이 녹아든 셈이다.

'이건희 평가' 코드 따라?…與 "공정3법" 野 "우리도 혁신"
'삼성 저격수'로 꼽히는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2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가적으로 기업에 특혜와 권한을 몰아주던 방식으로 기업을 키우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아주 상징적이고 시장에 합리성을 갖춘 기업들로 거듭날 타이밍이 됐다"고 말했다.

재벌의 편법 승계 등과 관련해선, "자기들만 특권, 특혜를 기반으로 법 외적 존재로 있겠다는 인식에서는 더는 재벌 총수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두관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고인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을 주도했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무노조 경영, 경영 승계 과정에서 보여준 사회적 책임의 부족 등은 무거운 숙제로 남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번 주 추가 여론수렴을 거쳐 공정경제 3법 입법 절차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당 관계자는 "국정감사가 끝났으니 이제 입법의 시간"이라며 "법 통과를 위해 적극적으로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경제 3법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금융 그룹감독법 제정안으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다중대표소송제, 사익편취 규제 강화 등이 골자다.

다만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끌어올리고 국가 위상을 한층 높이는 등 고인의 업적이 작지 않다는 점에서 추모 여론과 당의 정책 기조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류도 읽힌다.

삼성 출신인 양향자 최고위원은 고인을 추모하면서 공정경제 3법에 재차 우려를 나타냈다.

양 최고위원은 "고인의 기술에 대한 집착만큼은 모두가 나눠야 한다"며 "우리 경제의 허리인 중소·벤처기업의 혁신을 독려하고,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조항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대주주의 지위를 악용해 위법을 저지른 기업만 감사위원 분리선임 3%룰을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건희 평가' 코드 따라?…與 "공정3법" 野 "우리도 혁신"
국민의힘은 삼성의 신경영 철학을 재조명했다.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오늘날 정부 정책은 물론, 당 혁신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원석 비대위원은 비대위 회의에서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이 회장의 당시 어록을 빌려와 "우리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 키우고, 쓰고, 평가하는 일을 가장 어려운 일로 꼽았던 이건희 회장의 말처럼, 한 명의 천재가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인재제일주의 경영 철학을 정치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물 부재론'에 시달리는 당의 현주소를 지적한 맥락으로 읽힌다.

김병민 비대위원은 회의에서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거론하면서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며 "부동산으로 국민 눈물 마를 날 없게 만든 장본인들 싹 바꾸라"고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이 이 회장에 대한 평가를 묻자 "삼성전자의 세계적 위상을 높여서 대한민국을 대표할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신 분"이라고 답했다.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대표 바뀌어서 기대감이 컸는데, 혹시나가 역시나가 됐다"며 정의당의 '조문 불가' 결정을 비꼬았다.

그는 "과거 김정일 조문하자고 했던 정의당이 이 회장 조문은 안 하겠단다.

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 만든 김정일 보다, 못사는 나라 잘사는 나라로 탈바꿈시킨 경제 리더의 삶이 더 가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