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용진 의원 "삼성생명법, 국회에서 바뀔 수 있다"
‘과연 우(右)로 ‘한클릭’ 이동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8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사진)을 찾아갔다. ‘경제 3법’이라 불리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 제정법이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오른 상황이었다. 관점이 달라도 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했던 어느 한 보수 신문 인터뷰의 잔상도 남아있었다.

박 의원이 누군가. 20대 국회(2016~2020) ‘초선’ 시절부터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을 잇따라 발의하며 ‘재벌 저격수’로 명성을 날렸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 계좌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부정 문제 등을 국회에서 폭로해, 금융당국과 검찰의 수사를 이끌어냈다. 상임위원회를 교육위원회로 옮긴 이후 ‘유치원3법’의 국회 통과를 주도했다. 사립 유치원의 고질적인 회계 비리를 막는 제도로 평가받았다.

그런 그가 다시 21대 국회에서 거대 여당의 정무위 소속 의원으로 컴백한 것이다. 공정거래법과 금융그룹감독 제정법의 세부 내용을 손보는 상임위다. 소위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수술대에 오른다. 증권가도 박 의원의 행보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박 의원이 지난 6월 대표발의한 법률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2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박 의원은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바꾸고 싶은 법과 제도’를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선 “입법 과정에 재계 의견이 반영되면서 박근혜 정부 당시 법률 안보다 많이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고강도 기업 규제 법안이라는 재계의 우려에 대해선 “엄살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겉으로는 별로 바뀐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깊은 속내는 조금은 달라진 듯 했다. 그는 경제 3법에 대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보완될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했다. 특히 삼성생명법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 측이 제안한 ‘소급 입법 금지’ 조건을 단 중재안에 대해서도 “원안을 고집하지 않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삼성의 새로운 지배구조에 대해 굳이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되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은 발언으로 해석됐다. 대신 그는 “국내 기업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고 오너 중심의 대기업 의사 결정 시스템을 바꾼다는 두가지 원칙은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진보 성향의 정치 기반을 의식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내용은 수정했다.

▷20대 국회 초선일 때 소위 ‘유치원 3법’ 통과를 주도해서 성과를 냈다.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바꾸고 싶은 법, 제도가 있다면.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이다. 정부가 최근 발의한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 제정법 등 공정경제 3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의미다. 제가 쓴 책의 첫 구절이 ‘불공정 필망국’ 이다. 공정한 경제 없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 ”

▷정부가 국회에 낸 법안에 대해 평가하자면.

“정부가 재계 의견을 많이 듣고 규제를 많이 완화했다고 본다. 상법 개정안의 경우 박근혜 정부 때 안보다 많이 후퇴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공정위 내부 특별위원회의 개정안에 비해 미진하다. ”

▷상법 개정안에서 집중투표제가 제외된 것 등을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이 당초 공약했던 상법 개정안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탄핵까지 당했다고 보고 있다. ”

▷김 위원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정부의 상법 개정안을 보완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의 경우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조항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3%룰을 10, 15% 등으로 늘리는 방식이다.

“법을 개정하려는 취지는 이사회 구성원을 다양하게 만들고 대주주와 경영진을 견제할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 등 경제단체들은 재계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하면서 사실상 기업 총수들의 이익을 반영하려고 한다. 기업의 이익이 총수의 이익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유하자면 과체중 상태인 기업에 대해 음식 조절을 하고 필요하면 수술도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재계는 병원도 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동의할 수 없다.”

▷대한상의, 야당이 아예 법을 고치지 않겠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점진적으로 고치자는 것이다. ‘의결권 3%’ 룰은 손댈 수 없다는 의미인가.

“국회 논의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다만 법 개정의 취지는 기업의 건강을 위해 의사의 처방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

▷민주당은 수술을 하자는 것이고 재계는 약만 먹어도 된다는 이야기인데.

“수술이 아니라 음식 조절을 하자는 수준이다. 대기업들의 경우 전략기획 담당 부서에 일부러 ‘레드팀’을 둔다. 무조건 반대 의견을 내는 조직이다. 건강한 조직을 위한 제도다. 감사위원이 들어온다고 회사가 망한다는 주장은 엄살이다. 옛날 이사회를 도입할 때도 반발이 심했다. ”

▷국내 대기업들이 과거 지배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엘리엇매지니먼트와 같은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엄살 버전 2’라고 할 수 있다. 과거 한국 기업을 공격했던 해외 펀드는 칼 아이칸, 소버린, 엘리엇 정도다. 공격받은 기업들이 어떻게 됐나. 더 좋아졌다는 평가도 있다. 기업의 총수들은 전전긍긍했을 지 모르지만, 공격을 받았던 기업들은 지배구조가 투명해지고 주주들에게 배당을 더 많이 했다. 엘리엇의 공격을 받은 삼성전자가 이후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더 많이 한 게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됐지 해를 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미국 등 선진국에선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주가 부양 목적으로 기업 경영권에 과다하게 간섭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한국 기업이 그런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은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

▷보험사 보유 계열사 주식의 평가 기준을 원가 기준에서 시가로 바꾸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도 ‘핫이슈’다. 소위 ‘삼성생명법’으로 불린다. 대한상의에선 “개정안대로 제도를 바꾸되 소급 적용하지 말자”는 대안을 냈다.

“삼성은 분명 ‘땡큐’ 할 거다. 보험, 은행, 증권 등 전 금융사를 통털어 시가가 아닌 원가 기준으로 계열사 지분 가치를 반영하는 건 삼성생명, 삼성화재가 유일하다. 고객 자산을 어느 한 주식에 몰빵하지 말라는 게 법의 취지다. 그런데 시행령도 아니고 감독 규정으로 삼성생명만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전체 자산의 14%가 넘게 보유한다. 이게 바로 특혜다. 잘못된 자산 운용으로 보험사가 망하면 우리 경제의 바이러스 슈퍼전파자가 될 수 있다. ”

▷삼성이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특혜를 받았다. 고객의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라는 법의 취지를 위배했다. ”

▷설사 시행 규칙이 법 취지에 위배됐다고 하더라도 기업이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특혜라고 하는 것이다. 2014년부터 국회에서 이런 법안이 발의됐다. 제가 지적한 것도 2017년부터였다. 그런데도 삼성은 아직도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고 있다. ”

▷이번에 지배구조를 바꿨는데 또 ‘제 2의 박용진’이 나와 지배구조를 또 바꾸라고 하면 어떻게 되나. 그래서 소급하지 말자는 대안을 얘기하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왜 위험해지나, 삼성생명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게 아니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는 전혀 다른 별개의 법인이다. 삼성생명은 계약자가 맡긴 돈, 주주의 이익을 잘 관리하면 된다. ”

▷법이 통과되면 삼성전자의 지배구조가 바뀌게 된다.

“기업의 이익을 이야기하자, 왜 대주주 이야기를 꺼내나. ”

▷삼성전자 지배구조는 대주주의 이해 관계도 걸려있지만, 소액주주들도 관계가 있다. 박 의원 말대로 지배구조가 바뀌어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면 좋겠지만 잘못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저도 삼성전자 망할까 걱정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별개의 두 사안을 섞어서 논의할 필요는 없다. 보험업법 106조의 취지는 개별 보험사의 잘못된 자산 운용이 금융과 경제의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거대한 방파제를 쌓는 데 유독 삼성생명의 구멍만 놔둘 수는 없다. 삼성전자의 지배구조는 이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

▷법과 감독규정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는 기업의 잘못이 아니다. 엄격히 말하면 정부(금융위)나 국회의 잘못 아닌가.

“정부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몇년 전부터 최종구(전 금융위원장), 은성수(현 금융위원장)에게 감독 규정을 고치라고 했다. 그런데 법으로 고쳐달라고 한다. 기업도 문제는 있다. 금융위원장이 수년 전부터 삼성에 대해 자체 해결 방안을 내라고 이야기 했다. 삼성은 꿈쩍도 안하고 있다. ”

▷공무원은 책임질 일을 하기 싫어 한다.

“공무원(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이 그 정도 이야기했으면 삼성생명도 대안을 만들었어야 한다. 지금 와서 ‘우리는 빼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

▷보험업법 개정안은 중재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인가.

“그렇지 않다. 어떤 법과 제도가 100% 원안 그대로 국회에서 통과되나. 현실에 법이 적용됐을 때 부작용은 누구도 쉽게 알기 어렵다. ‘유치원 3법’도 박용진의 원안대로 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선 양보하지 않았다. ”

▷경제 3법이든 보험업법 이든 이 부분은 절대 양보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다면.

“크게 두가지다. 우선 기업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 기업의 이익이라고 함은 기업이 돈을 많이 벌고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많이 돌려주고, 노동자에게 많은 월급을 줄 수 있는 일이다. 두번째는 선진국에 없는 대한민국의 독특한 경제시스템을 고치는 일이다. 대기업 총수가 전체의 3.6%에 불과한 지분율로 2200개 계열사를 지배하는 문제다. 기업의 투명성, 배당 성향을 떨어지게 하고 주주들은 단기 투자에 매달리게 만든다. ”

▷3.6%의 쥐꼬리 지분율을 가진 총수가 기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는 지 모르겠다. LG와 같은 대기업은 대주주 지분율이 45%가 넘는다. 그런 대기업 임원, 직원들은 박 의원이 하는 말을 들으면 불쾌해할 것 같다.

“그런 사람들 기분 맞추려고 정치하는 건 아니다. ”

▷일부 대기업, 중견기업의 문제라는 지적엔 동의하나.

“그렇다. 다만 문제점을 드러내기 위한 어법은 다를 수 있다. ”

▷미국 등 선진국에선 정부의 공정거래당국이 독과점을 규제하고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한다. 우리나라처럼 출자 총액, 순환출자 등 경제력을 사전 집중하는 규제는 거의 없다.

“1860년 통과된 미국의 반독점법으로 1934년 보잉이 해체됐다. 당시 보잉의 대주주였던 윌리엄 보잉은 충격을 받고 주식까지 팔았다. 하지만 회사가 쪼개지나 항공기 제작, 운수, 헬기 제조사 등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계속 나왔다. 트럼프 정부에서도 구글, 페이스북 등 4대 IT(정보기술) 기업에 대해 독점법 위반으로 조사를 하고 있다. 우리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흐름이다. ”

▷1930년대 이야기다. 지금은 맞지 않는 얘기다. 미국의 아마존은 온라인 유통 1위 업체이면서 제조업, 금융, IT 등 전방위 사업에 뛰어든다. 과거 재벌들의 문제라고 비판했던 ‘문어발식 확장’이다.

“아마존과 같은 미국 기업들은 지분을 100% 인수하지 않느냐. 한국은 이보다 훨씬 적은 지분을 인수하거나 지분을 인수하지 않은 대주주가 사적인 이익을 취한다. ”

▷100% 인수하면 대기업도 어떤 회사를 인수하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나.

“동의한다. 과거 순환출자를 통해 은행에서 특혜를 받아 인수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엔젤투자, 스타트업 투자를 하는 문제는 다르다. 100% 찬성한다. 구글은 2014년 딥마인드라는 회사를 무려 7000억원을 주고 샀다. 직원 50명 규모 스타트업으로 창업 후 4년간 한푼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지금은 그 회사가 전 세계 AI의 경쟁력을 선도하는 핵심기업이다. ”

▷대기업이 해외 스타트업을 사들이면서 국내에서는 잘 안하려는 이유가 출총제 등 사전 규제와 중소기업 기술 탈취 등에 대한 규제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니 아예 발을 담그려 하지 않는다.

“그런 자세로는 한국 경제 혁신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미국을 보자. 미국식 자본주의의 핵심은 특허 제도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특허를 침해해서 소송에 가서 지면 기업이 망할 정도의 타격을 입는다. 미국의 엄격한 특허 제도가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숲을 만드는 것이다. 규제가 혁신을 만들지 규제를 없애는 게 혁신을 이뤄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전 세계적으로 금융 산업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페이스북은 가상화폐 리브라를 만들겠다고 하고 애플은 애플카드를 출시했다. 한국의 엄격한 금산분리 규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 뼈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규제가 도입됐다. 이런 제도를 바꾸려면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있어야 한다. ”

▷카카오뱅크가 국내 은행 산업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점은 동의하나.

“혁신적인 경영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카카오뱅크 자체가 혁신은 아니다. 카카오뱅크 이전 이미 비대면 업무 처리가 있었다. 앱으로 송금도 하고 대출도 할 수 있었다. 기존 4대 금융지주를 중심으로 ICT(정보통신기술)과 융합하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KT(케이뱅크) 하나 살리려고 온갖 특혜를 주는 것도 부작용의 한 단면이다. ”

▷4대 금융지주의 기득권을 옹호한 것처럼 들린다.

“금산분리 규제에 대해 특혜를 주는 게 옳은 지 고민해야 한다. 도로에 신호등을 왜 만드나. 당장은 귀찮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런 규제 하나로 서울의 전체 도로가 안전해 지는 것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은 부작용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한다. ”

▷카카오뱅크가 혁신을 가져왔다는 데 대해 최소한 소비자들은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소비자의 편의를 가져온 것은 맞다. 하지만 규제를 완화하면 중금리 대출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그런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

좌동욱/이동훈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