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북미관계에 악영향 우려 가능성…'시신훼손 없었고 독자판단' 해명도
비난 의식했나·시신훼손 주장 억울했나…김정은 사과배경 주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군의 남측 민간인 사살 사건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빠르게 사과한 것은 남측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고조되는 상황을 의식한 조처로 보인다.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김 위원장으로서는 민간인 사살 뒤 기름을 붓고 불에 태웠다는 남측의 발표로 북한 정권의 잔혹성이 부각되는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는 의미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사실과 다른 부분은 바로잡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때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우려해 해상에 표류 중인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고 시신을 기름을 붓고 태운 것으로 알려지자 남측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북한의 '만행'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접지 않은 상황에서 악화한 국제사회의 대북 여론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25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한국의 여론 악화를 빠른 사과의 이유로 분석했다.

지난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대남 군사행동에 나설 듯하더니 갑자기 김 위원장이 이를 보류시킨 것처럼 이번에도 한국 여론을 의식해 사과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여론도 고려했을 수 있다.

11월 대선 이후 탄생할 미국의 새 정부와 대화를 하려 해도 이 문제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비난 의식했나·시신훼손 주장 억울했나…김정은 사과배경 주목

이대로 두면 내달 초 방한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대북 메시지도 상당히 강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했을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국방연구실장은 "폼페이오 장관이 오면 북한은 어떤 메시지가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면서 북측으로선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 전 불미스러운 일을 서둘러 정리하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여론에 신경 쓰는 것 자체가 김정은 위원장이 선대 김일성·김정일과는 달리 이른바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태도라는 분석도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10·4 남북정상선언 기념행사'에서 북한은 과거 코로나19 위로전문도 보낸 적이 있다면서 '정상국가로서 할 것은 한다'는 수준에서 전통문을 보낸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김 위원장 입장에선 실제 일어난 일보다 과도하게 비난받는 상황을 해소하고자 했을 수 있다.

북측은 남측에 보낸 전통문에서 부유물만 태웠을 뿐 시신을 불에 태운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는 남측 발표와는 달리 신분 확인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고 도주하려 해 사살했다는 취지로 북측은 설명했다.

아울러 해군사령부의 지시가 아니라 정장이 행동준칙에 따라 사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일이 정권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이뤄진 일이 아닌 우발적 사건에 가깝다는 게 북한 설명인 셈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 통지문의 행간을 보면 '우리는 '9·19 군사합의'를 어기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며 "크게 보면 자신들은 적대적 행위를 중단한다는 부분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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