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코로나·수해에도 남측 지원 외면…'자력갱생' 기조 확고
역사문제 등으로 다자협력 쉽지 않아…'발등의 불' 코로나 대응에 당장은 여유없어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시간으로 23일 새벽 진행된 제75차 유엔총회에서 북한·중국·일본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 방역 협력체를 제안한 것은 일단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한 측면이 커 보인다.

북한이 남측의 '러브콜'을 철저히 외면하는 상황에서 중국 등이 포함된 다자협력의 틀을 활용한다면 북측이 느끼는 부담이 아무래도 덜하지 않겠느냐는 계산도 깔렸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코로나 이후의 한반도 문제 역시 포용성을 강화한 국제협력의 관점에서 생각해주길 기대한다"면서 남북한과 중국, 일본, 몽골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이하 동북아 협력체)를 제안했다.

이어 "여러 나라가 함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하는 협력체는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다자적 협력으로 안보를 보장받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북아 협력체가 방역·보건에만 국한하지 않고 한반도 주변국들이 참여해 북핵 문제 등에 대한 해법을 찾을 동북아 다자안보체제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문대통령 제안 '동북아 방역협력체'에 북·중·일 호응할까
그간 남북대화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비롯한 전염병이나 수해, 산불, 병해충 등 재난 협력을 추진하던 정부가 동북아 협력체 구상을 들고나온 것은 북측이 남측과의 대화에 일절 호응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지난 6월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판문점 선언의 결실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한때 대남 군사행동까지 시사하는 등 남북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지금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감은 많이 잦아들었지만, 그렇다고 남북협력 분위기를 되살려보려고 남측이 내미는 손을 다시 잡으려는 기색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남측이 홍수, 태풍 등으로 북한의 어려움이 커지자 피해 복구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큰물(홍수) 피해와 관련한 그 어떤 외부적 지원도 허용하지 말(라)"고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문대통령 제안 '동북아 방역협력체'에 북·중·일 호응할까
하지만 북한이 모든 종류의 외부지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러시아로부터 밀 2만5천t을 구호물자로 지원받았고,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등으로부터 태풍피해 초기지원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 남북 양자 협력에 매달리기보다는 국제협력의 방식을 제안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이자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동북아 협력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북한의 참여를 설득하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북아 협력체 구상이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많다.

우선 북한의 호응을 낙관하기 어렵다.

북한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북제재 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자력갱생으로 완전히 정책 방향을 돌린 데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북중 국경까지 봉쇄하고 내치에 온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등의 호응을 끌어내기도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동북아는 그간 일본의 퇴행적인 역사인식과 미중 갈등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과 일본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역내 협력이 쉽지 않았다.

더욱이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각국이 여전히 '내 발등의 불'을 끄는 데 정신이 없어 당장은 다자협력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