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내 양대 예산 검토 기관인 국회 예산정책처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잇달아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급안’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역시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며 국회를 향해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심사 주체인 여야가 아닌 연구기관과 시민단체까지 정책 효과와 형평성에 의문을 나타내면서 ‘원안대로’를 고집하고 있는 정부·여당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예정처·예결위·경실련 “반대”

예산결산특위는 15일 ‘2020년도 제4회 추가경정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통신비 지급안의 정책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담당 예결특위 수석전문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활동 확대에 따라 통신비 지출 부담이 증가한 경우 통신비 지원 필요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통신 서비스 지출은 전년 대비 감소해 코로나19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은 그동안 전 국민 통신비 지급 추진의 근거 중 하나로 코로나19 사태로 소상공인 등 국민의 통신비 지출 부담이 늘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예결특위에 따르면 통신비 지출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 현황’을 보면 휴대폰 데이터 사용량은 지난 7월 66만5965TB(테라바이트)로 전년 동기(51만597TB) 대비 크게 늘었지만, 지난 1분기와 2분기의 통신 서비스 지출은 가구당 각각 11만3000원, 11만4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1.4%, 1.8%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통신비 부담 증가를 예산으로 보전해줘야 한다는 정부 주장의 근거가 약하다는 점을 방증하는 셈이다.

예결특위는 정부가 사업 수행을 위해 추진 중인 ‘통신비 감면지원 임시센터 운영’에 대해서도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별도의 상담·안내센터를 운영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예정처 역시 전날 비슷한 문제제기를 했다. 예정처는 ‘2020년 4회 추경 예산안 분석 자료’를 통해 “이동통신서비스에 가입, 이용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통신비 감면지원 임시센터와 관련해서도 “사전 준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기에 센터의 비효율적인 운영이 우려된다”고 했다.

시민단체도 비판에 가세했다. 경실련은 이날 발표문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소외계층 및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선별 지원을 더 두텁게 하도록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통신 지원금 명목으로 지출할 예산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 대한 보다 두터운 지원에 사용되도록 국회는 추경안 심의 과정에서 이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곤란한 與 “재협상도 가능”

이 같은 비판에도 청와대는 여전히 ‘정책 일관성’을 강조하며 현 단계에선 다른 안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여당에서 지원을 요청한 것을 청와대가 수용한 것인 만큼 처리는 결국 ‘국회의 몫’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내부에서는 야당이 일부 금액을 깎더라도 결국에는 국회를 통과하지 않겠냐는 전망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을 넘겨받은 여당은 점점 곤란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 진보진영인 정의당조차 반대 의견을 낸 데 이어 연구기관과 시민단체까지 부정적인 분석을 내놓으며 회의적 여론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야당과의 재협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추경 취지에 맞고 여야가 합의 가능한, 더 효과적인 대안 사업을 제안하면 열어놓고 이야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통신비 지원 사업보다 더 취지에 부합하는 사업을 야당이 제안하면 민주당도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여야는 추경안을 오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18일부터 예결위 전체회의를 열어 종합정책질의를 한 뒤 21일 예결위 소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박홍근 예결위 민주당 간사는 “각 사업과 내용에 관한 논의는 따로 하지 않았다”고 말해 통신비 지원 등을 둘러싸고 갈등의 불씨가 남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성상훈/김소현 기자 uphoon@hankyung.com